매일신문

[경제 칼럼] 일본의 샐러리맨 노벨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정우창 대구가톨릭대학교 기계자동차공학부 교수(KAIST 공학박사)

정우창 대가대 교수
정우창 대가대 교수

실패 거듭해도 연구 매진 환경 조성
한국도 그런 기업 있는지 돌아볼 때

1973년 설립 KAIST 올해로 46살
우리에게도 노벨상 소식 머잖은 듯

리튬이온 배터리는 휴대전화, 노트북, 전기차의 필수 부품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1970년대 석유위기 때 화석연료 없이 에너지 생산 방법을 연구하던 스탠리 휘팅엄(77) 뉴욕주립대 교수가 처음으로 제안했다. 휘팅엄 교수가 개발한 배터리 용량은 2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0년 존 구디너프(97) 텍사스대 교수에 의해 2배로 증가했다. 1985년 아사히카세이(旭化成) 연구원이던 아키라 요시노(71)는 폭발 위험을 줄이고 안전성을 높인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했다. 소니(Sony)는 요시노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1991년 상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린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수요는 93GWh였으나 매년 35%씩 크게 성장해 2025년에는 941GWh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10월 9일 발표된 노벨 화학상의 영예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휘팅엄 교수, 배터리 용량을 폭발적으로 늘린 구디너프 교수, 리튬이온 배터리의 안전성을 높여 상용화에 기여한 요시노 박사 등 3명에게 돌아갔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대학교수라는 공식을 종종 깨트리는 나라가 일본이다. 반세기 전인 1973년 소니 연구원이던 에사키 레오나는 반도체 연구로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는 정밀기계업체 시마즈제작소의 주임연구원인 학사 출신 다나카 고이치가 고분자 재료의 질량측정법 개발로 화학상을, 2014년에는 니치아화학공업의 나카무라 슈지가가 청색 LED 개발로 물리학상을 받았다.

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아키라 요시노 역시 기업 연구원 출신이다. 그는 교토대학에서 학사·석사를 마치고 1972년 아사히카세이에 입사했으며, 처음 10년 동안 수행한 연구는 모두 실패했다.

34세가 되던 1982년 구디너프 교수의 논문을 읽고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을 시작했으며, 2015년 고문으로 물러나기까지 34년간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에 매진했다. 아사히카세이 재직 기간도 43년이나 됐다.

샐러리맨으로서 석사학위 소지자인 아키라 요시노의 노벨상 수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기업 연구소나 국책연구기관 모두 박사학위자 중심이다. 박사에 대한 인식은 우리와 일본이 많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박사의 의미가 과하게 포장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기업의 연구원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연구 환경이 구축되어 있는지, 실패를 거듭하면서 43년간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게 배려하는 기업이 우리에게도 있는지 돌아볼 때다.

일본에는 논문박사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기업에 근무하면서 한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후 그 분야 연구 결과로 박사학위를 받는 제도이다. 논문박사는 실무 경험과 이론이 겸비된 진짜 전문가에게 주어진다.

아키라 요시노도 입사 33년 차인 2005년 57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요시노 박사는 2017년부터 메이조(Meijo)대학 교수 겸 아사히카세이의 명예 펠로우로 재직 중이며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제조업 강국 일본에는 진짜 전문가인 수많은 '요시노'가 있다. 기업은 50세, 국책연구기관은 60세, 대학은 65세를 갓 넘긴 나이에 퇴직해서 전문성을 포맷(format)한 뒤 비전문가로 살고 있는 우리의 과학기술자 활용을 위한 대책 마련도 절실해 보인다.

2019년 노벨 화학상은 1975~85년에 수행된 연구의 결과물이다. 1975년, 1980년, 1985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각각 608달러, 1천711달러, 2천458달러에 불과하였다. 노벨상의 씨앗이 뿌려질 토양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원 발전에 큰 기여를 한 KAIST가 1973년에 설립되었으니 올해로 46세 중년이 되었다. 톰슨로이터가 논문의 피인용 횟수를 조사해서 매년 선정하는 세계 상위 1% 연구자에 선정되는 국내 연구자의 숫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노벨상 소식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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