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가을이 가득하다. 바람 따라 사라져 버린 황금 들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가슴에 남는다. 본체를 떠난 낙엽이 허공을 맴돌다가 대지 위로 떨어진다. 하나둘씩 제 몸을 버리고 모든 것이 텅 비어져 간다. 날마다 힘에 겨워 떨어지는 낙엽이 쌓여만 간다. 노란 은행잎도 붉은 단풍잎도 넓은 보리수잎도 바람 따라 자리를 옮겨 가며 쌓인다. 밭에 호박은 누렇게 잘 익어 마른 풀숲에 숨어 있고 채소들은 씨앗을 땅에 떨군다.
추수를 마친 들녘은 빈 공간이다. 생명을 키우고 결실을 맺고 빈자리로 돌아와 회복을 위해 휴식에 든다. 사람에게도 밤낮이 주어져서 소진한 기운을 회복하듯 계절의 순환으로 자연계는 비우고 채우며 생명력을 얻고 전한다. 낙엽 위를 산책하며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자아를 느끼며 생각에 잠긴다. 밤은 길어지고 새벽 기운은 차다. 이렇게 한 해의 시간이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계절로 저문다. 사람도 자연도 인연에 의해 오고 감을 바라본다. 삶과 죽음 윤회의 진리가 가을에 있다.
자연과 같이 인생도 때를 알아 소유하고 떠나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삶이 가벼워진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무소유의 삶을 살란 뜻이 아니다. '무소유'(無所有)란 내가 가진 걸 모두 내려놓고 물질적으로 가난해지는 삶이 아니다. 예수님도 '무소유'를 설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복음 19장 24절 참조) 모두 들어본 유명한 구절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이런 것이다.
삶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모두 경쟁이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달려야 하는데 소유욕이 없다면 험난한 경쟁사회를 어떻게 헤쳐갈 수 있겠나?
"스포츠 감독이나 코치는 '몸에 힘을 빼라, 긴장을 풀라'고 한다. 왜 그럴까. 몸에 힘이 들어가면 어깨와 근육이 경직되고 결국 자기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없다.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마음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승리에 집착하기 때문에 결국 내 안의 에너지를 다 뽑아 쓸 수 없다. 우리의 삶도 무언가를 '꽈∼악' 붙들고 있으면 긴장하게 된다. 힘이 들어가면 삶이 경직되고 유연해지지 않는다. 물질적 재산뿐만 아니라 과거의 상처나 현재의 욕망, 미래의 불안 등으로 마음이 뭔가를 틀어쥐고 있다면 그게 바로 '소유의 삶'이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집착에 대한 무소유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의 기준도 '부와 소유의 총액'이 아니라 '집착의 총액'이다. 집착이 클수록 바늘구멍은 좁아지고, 집착이 작을수록 바늘구멍은 넓어진다. 집착이 많을수록 천국의 문이 좁아지고, 집착이 적을수록 천국의 문이 넓어진다"라 고 백성호의 현문우답은 말한다.
무소유는 모든 걸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집착을 좀 내려놓고 경쾌하게 삶을 스윙하는 일이다. 그러니 '무소유'는 산속에 사는 수도자에게도 필요하지만 복잡한 일상을 헤쳐 가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덕목이다.
문재인 정부도 힘을 좀 빼야 한다. 재임 반환점을 돌면서 일자리 외에는 잘못한 점이 없다고 한다. 정의, 공정을 외치며 다 같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제껏 시행한 정책이 앞으로 꽃을 피울 것이라고 한다. 경제는 하락하고 외교, 안보도 불안하다. 불통 국정운영에 이제 힘을 좀 빼고 사회와 기업과 야당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통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오동나뭇잎 하나 떨어져 온 누리가 가을임을 안다"는 시의 한 구절처럼 망월사 누각 앞의 황갈색 단풍이 곱다. 단풍과 잔디밭에 떨어진 낙엽이 한옥과 탑과 산천의 선을 따라 가을이 환상적으로 깊어간다. 가을은 말없이 사라지기에 더욱 연민을 느끼게 한다.
낙엽과 무소유를 생각하며 이미경의 '고향의 노래'와 차이콥스키의 '가을의 노래'를 듣는다. 이맘때쯤이면 '가곡의 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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