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국내 금융위기 실화 바탕 범죄극 '블랙 머니'

정지영 감독 작, 조진웅·이하늬 주연… 현실고발 묵직함을 쉽고 재밌게 풀어낸 속 꽉 찬 영화

영화 '블랙 머니' 스틸컷
영화 '블랙 머니' 스틸컷

영화 '블랙 머니'(감독 정지영)를 보면 현실 고발의 묵직함과 이를 경쾌하게 풀어낸 솜씨가 역시 거장 정지영 감독 작품답다.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의 패기 넘치던 정 감독의 연출력은 73세가 됐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고, 더 세련된 일면까지 보여줘 반갑기만 하다.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 1985'(2012) 등 사회 고발형 문제작을 연출한 그가 이번에 초점을 맞춘 것은 금융 범죄 실화극이다.

거침없는 검사 양민혁(조진웅 분). 그는 자신이 조사하던 뺑소니 사고 피의자가 자살하면서 남긴 문자메시지 하나로 벼랑 끝에 내몰린다. 검사한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피의자 주변을 파헤치던 중 그녀가 대한은행 헐값 매각 사건의 중요한 증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녀가 금융감독원에 보낸 의문의 팩스 5장. 이로 자산가치 7조원의 은행이 1조 7천억원에 넘어간 희대의 사기사건을 따라간다. 그리고 금융감독원과 대형 로펌, 해외 펀드회사가 뒤얽힌 거대한 금융비리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영화 '블랙 머니' 스틸컷
영화 '블랙 머니' 스틸컷

'블랙 머니'는 불법 거래로 벌어들인 검은 돈을 말한다. 대한은행을 헐값에 외국에 팔아 남긴 금은 돈은 다 어디로 갈 것인가. 영화는 이 실체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익마저 내팽개치는 파렴치한 관료들과 검찰, 금융계에 실체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 영화는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1조3천800억원에 인수하면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12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매각하면서 4조6천600억원의 차익금과 배당금을 챙긴다. 이때 외환은행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만들어 헐값에 인수해서 되팔았다는 '먹튀' 논란이 일었다.

문제적 시선은 묵직하다. 그러나 톤과 컬러는 경쾌하다. 어려운 경제 용어는 쉽게 풀어내고, 사회적인 문제는 뉴스 영상을 활용하고, 복잡한 관계도는 화이트보드로 대신한다. 이 부분은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얼마나 정교하게 시나리오작업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 '블랙 머니' 스틸컷
영화 '블랙 머니' 스틸컷

특히 캐릭터의 앙상블이 돋보인다. 우선 양민혁 검사는 거침없이 막나가는 바람에 '막프로'라는 별명의 소유자. 그러나 경제와 금융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선배와 부장 검사에게 돌직구를 날리고, 친한 선배인 인권변호사에게 묻고, 기자들에게도 자문을 구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관객도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 설명을 위한 억지 장면이 없다보니 자연스럽고 영리하다.

양민혁과 함께 중요한 캐릭터가 국제 통상전문 변호사인 김나리(이하늬 분). 그녀는 경제전문가이자 야심이 있는 인물이다. 소위 모피아(재무부 출신 인사를 뜻하는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와 끈이 연결돼 있다. 그래서 둘의 관계가 진행되면서 사건의 어두운 이면까지 드러나게 된다.

'블랙 머니'는 성추행 검사로 낙인찍힌 주인공이 거대한 금융비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수사를 시작한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치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영화 '블랙 머니' 스틸컷
영화 '블랙 머니' 스틸컷

주제의식을 따르다보면 놓칠 수 있는 것이 영화적 재미다. '블랙 머니'는 가볍고 경쾌한 유머까지 담아 오락영화로 손색이 없다. 거기에 실화를 모티브로 하면서도 스릴러적인 긴장감도 건져 올린다. 전 총리 역의 이경영, 검찰총장 역의 이성민, 국내 최대 로펌의 대표에 문성근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망라돼 이야기를 풍성하면서 극적으로 만들어낸다.

특히 조진웅의 연기가 극의 흐름을 유연하게 살려낸다. 양민혁은 불법 감청을 하는 데다 고위 인사들의 파티장에도 거침없이 난입한다. 영장도 없이 긴급 체포하고, 전 총리며 공영방송사 사장 등에게도 주저하지 않고서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조진웅은 이런 양민혁을 따스하면서 정의감 넘치는 인물로 연기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무거운 영화가 아니라 재미있는 영화이길 바란다"는 정지영 감독의 의도는 여실히 잘 나타난다. 과거의 이야기지만, 여전히 그 고통은 국민이 안아야 한다는 묵직한 목소리 또한 잘 담겨 있다. '블랙 머니'는 알맹이와 틀이 조화롭게 꽉 찬 영화다. 113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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