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자본주의 시대의 신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지 아니면 인간이 신을 창작했는지 의문인 것처럼, 사람이 돈을 소유하는지 오히려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지 헷갈린다. 돈에 얽매여 한 인간의 삶이 극단적으로 좌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 '돈'이다. 은행원 생활 27년째로 늘 돈의 민낯을 대하면서도 과연 돈이 무엇인지 의문이던 나에게 이 책은 돈의 내밀한 속살을 보여주었다. '돈'은 19세기 프랑스 문학계를 대표하는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20권 중 18번째 책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투기적 금융을 소재로 한다.
저자인 에밀 졸라는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고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자라났다. 일반적으로 그는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모랄리스트이며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말년에 드레퓌스 사건에서 용감히 진실을 옹호한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는 같은 시기 유럽에서 살았던 찰스 다윈과 카를 마르크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직한 작품을 남겼다. 인간은 유전자에 새겨진 운명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자연주의와 자본에 의해 고통 받은 노동자의 해방에 몰두한 과학적 사회주의. 그러한 논지들이 곳곳에 보인다. 문학작품은 그 시대와 동떨어져 섬처럼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부동산 투기 실패로 처참하게 몰락한 주인공 사카르가 '기어코 성공해서 내게 등을 돌린 그자들 위에 보란 듯이 다시 군림해야지'라며 화려한 재기를 꿈꾸는 모습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카르는 유대인 은행가인 군데르만에게 시기심과 적개심을 느끼며 그를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무모한 열정으로 새로운 은행을 설립하고 투기적 행태로 주가를 조작하여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보인다.
"투기와 작전은 우리 사업과 같은 거대 사업에서는 핵심 바퀴요, 심장 그 자체입니다." (157쪽)
사카르가 은행을 설립하고 주가를 부양시키는 과정에서 돈에 대한 욕망을 가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합류한다. 이들의 욕망은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기 위한 몸부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강조한대로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고 인간의 본질 그 자체이므로 그 수단인 돈도 죄악시될 수 없다. 다만, 그 욕망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이루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생명의 존속에는 이런 과도한 열정, 이처럼 천박하게 소진되는 욕망이 반드시 필요했다." (314쪽)
이상주의자로 그려지는 시지스몽이 사카르에게 '타자를 위한 사랑이 사회조직 속에서 이기주의를 대체하고, 우리의 내면에서 활기를 띠는 날이 언제나 올는지'라고 했지만, 그로부터 약 1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말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위 이웃에 따뜻한 눈길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눈이 먼 결과이다. 더구나, 돈이 금융거래의 수단을 넘어 숭배의 대상이 된 이후, 돈을 가지면 타자로부터 암묵적 복종까지 덤으로 가지게 되었다. 수단과 목적이 지나치게 전도된 셈이다. 이제 돈의 이면에 감춰진 욕망을 직시하고 돈을 숭배의 대상에서 화폐측정이라는 도구적 단계로 끌어 내리자. 이 책을 통해 돈에 투영된 나의 욕망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소설적 재미뿐만 아니라 인생의 의미도 찾게 될 것이다.
배태만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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