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삭기가 비탈에 박힌 돌을 내리찧을 때/ 찧고 또 찧으며 흐느낄 때// 진화를 거부한 사랑의 방식이 저러할까// 아무도 개입할 수 없는 단도직입/ 알아들을 수 없는 고백이 메아리친다// 천둥의 말이거나 번개의 노래거나// 고백은, 돌의 심장을 뚫고 들어가/ 사랑의 손목을 잡고 걸어 나오는 일이기도 하겠지.'- 고백-
청도에서 태어나 영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사윤수 시인이 첫 시집 '파온'에 이어 두 번째 시집 '그리고, 라는 저녁 무렵'을 펴냈다. 시인은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2018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50여 편의 시가 담겨 있는 이번 두 번째 시집은 '여백과 고요의 주름'을 펼치며 내딛게 된 세계를 실감하는 장면들을 섬세한 언어로 추적하고 있다.
현생과 전생을 오고가는 듯한 시간의 오묘함을 본 떠, 현재 눈앞에 머물러 있는 삶을 고스란히 고백하는 시인의 담담함과 그 말들이 일구는 풍경은 마치 "새들이 남긴 적막이나 받아"쓴 흔적처럼 고요의 시간을 뒤흔든다.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부터 미추왕릉과 육단서랍장으로 경유해가는 시인의 노선도를 따라가면 시가 삶에게서 궁금해 했던 '주소'지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그 주소지엔 "고요가 가슴이라면 미어터지는 중"의 절절한 시간이 흐르고 있고,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갔던" 것들의 뒷모습이 뒤척이고 있다. "허공의 비포장길을 흔들리는 슬픔 혼자 가고 있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던 시인의 남겨진 그 장소를 우리는 이 시집으로 하여금 잠시 들를 수 있게 된다.
해설을 쓴 송재학 시인은 이번 시집을 "협소 지점에서 여백과 고요는 격렬함과 대치하고 광의의 지점으로 나오면 격렬함을 삼킨 여백과 고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격렬함을 삼킨 여백과 고요가 구성하는 이 날카롭고 첨예한 세계는 언뜻 앙상해보이다가도, 다시 무성해지는 시간을 보여준다. 삶을 견뎌내기 위해 우리가 우리의 생활에서 골라온 작고 연약한 것들이 겹겹으로 쌓여 있는, 그 시간을 사윤수 시인은 홀로 걸어가고 있다. 112쪽, 9천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포항 찾은 한동훈 "박정희 때처럼 과학개발 100개년 계획 세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