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조국(曺國) 탓에 위험해진 조국(祖國)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애치슨라인'을 발표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적화(赤化) 야욕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애치슨라인 밖으로 밀려났고, 2주 후 스탈린은 북한 김일성에게 남한을 침범해도 좋다는 신호를 줬다. 애치슨라인이 6·25전쟁 도화선이 됐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이 23일 0시 정식 종료될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국방장관에게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지소미아 연장 조건으로 내건 수출 규제 철회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최종 방침을 정해 미국에 통보했다. 역사·경제 문제로 촉발한 한·일 갈등이 한국 안보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비화했다.

날로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지소미아는 한·미·일 삼각 군사 동맹의 상징이다. 지소미아 종료를 한·일 문제만이 아닌 한·미 간 문제로 봐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미국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전방위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소미아 종료 원인 제공자는 수출 규제를 한 일본이다. 그러나 종료 카드를 꺼낸 것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다. 지난 8월 조국 사태가 터지자 반일(反日) 카드로 여론을 돌리려고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했다는 의심을 샀다. 그때엔 나라의 운명을 한 장관 후보자와 맞바꿀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조국을 건지려고 무슨 일도 감행하는 정권의 행태에 조국 구하기 카드라는 합리적 의심을 굳히게 됐다. 조국(曺國) 탓에 조국(祖國)이 위험해지는 기가 막힌 상황이 현실로 닥쳐온 셈이다.

미국 요구를 무시하고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미국에서 어떤 후폭풍이 몰려올지 걱정이다. 한국이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신(新)애치슨 선언'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69년 전엔 미국이 한국을 애치슨라인 밖으로 내몰아 6·25가 일어났는데 이번엔 우리 스스로 미국 방위선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조국 사태가 이 나라의 안보까지 뒤흔들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