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타임캡슐] 연탄불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내성천 시인'으로 불러달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 제목은...
'연탄재'가 아니라 ‘너에게 묻는다’

1972년 겨울 대구시내 한 가정집에서 주부가 연탄을 갈고 있다. 매일신문 DB
1972년 겨울 대구시내 한 가정집에서 주부가 연탄을 갈고 있다. 매일신문 DB

아마도 이맘때였을 거다. 김장이 월동준비의 시작이라면 연탄을 들여놓는 건 월동준비의 마무리였다. 1972년 겨울이다. 대구시내 한 가정집에서 주부가 연탄을 갈고 있는 사진이다.

불을 꺼뜨리면 야단났다. 불침번 서듯 새벽에 일어나 연탄을 새 것으로 갈아 넣는 건 주로 엄마의 몫이었다. 간혹 일찍 철이 든, 무슨 고민을 그리 하는지 새벽까지 잠을 못 이뤘다던 누나나 형들이 맡기도 했다. 구멍을 잘 맞춰야 불의 통로가 연결됐다. 다 타서 하얗게 변한 연탄재는 끄집어낼 때 조심해야 했다. 악력이 강하면 깨지기 일쑤였다. 쥐를 쫓는 무기로 변신하기도 했던 연탄집게는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구공탄이라 불리기도 했다. 아홉 개 구멍이 있는 것을 가리켰다. 사진 속 연탄은 25개 구멍이다. 구멍이 많을수록 화력이 좋다. 32개짜리가 끝판왕이다. 라면을 끓여먹으면 불 조절을 할 수 없었음에도 그렇게 꿀맛이었다. 실은 허기에 꿀이 배어난 것이었겠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용도인 난방은 물론 물을 끓여 온수로 썼고 요리 용도로도 알뜰하게 썼다. 모든 걸 아껴 쓰고, 다시 쓰자던 절약 정신은 연탄이 그냥 타기만 놔둬선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이어졌다. 끝내 군것질이 궁했던 아이들은 국을 뜨는 국자에 설탕을 풀어 녹여먹다 매를 부르기도 했다.

온기를 가득 넣어주던 연탄이 임무를 마치면 연탄재가 됐다. 눈길 미끄럼 방지재로 요긴하게 쓰였다. 염화칼슘을 동네방네 뿌릴 수 없던 때였다. 그래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도 나왔다. '연탄재'로 더러 오인하고 있는 시의 제목은 '너에게 묻는다'다. 안도현 시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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