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쇼팽과 함께 이 겨울을

구현자 대구시교육청 민원담당사무관  

구현자 대구시교육청 민원담당사무관
구현자 대구시교육청 민원담당사무관

굶주림과 공포에 질린 한 남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습니다. 장교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독일군 장교가 피아노에 한 손을 올리고 서서 그 남자를 지켜봅니다. 남자는 잠시 두 손을 마주 잡고 망설이다가 연주를 시작합니다. 두려움에 주저하듯 연주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결국 절정을 향해서 폭발합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입니다. 영화는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1930년대 바르샤바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던 스필만은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에게 전 가족을 잃고 맙니다. 간신히 홀로 살아남아 굶주림과 추위, 공포에 떨며 바르샤바의 빈집과 폐허를 옮겨 다니며 지내던 그는 은신처에서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와 마주칩니다. 그는 스필만에게 직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스필만이 피아니스트였다고 말하자 독일군 장교는 피아노 연주를 명령합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바르샤바의 거리로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흐릅니다. 연주가 끝난 뒤 호젠펠트는 유대인인 그를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음식과 옷까지 챙겨줍니다. 호젠펠트는 연주회에 꼭 가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영화에서 스필만이 선택한 연주곡은 프레데리크 쇼팽의 발라드 1번입니다. 쇼팽은 그가 좋아하던 폴란드 애국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서사시 콘라트 발렌로드에서 영감을 받아서 발라드 1번을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쇼팽이 태어난 폴란드는 18세기 말 세 번에 걸쳐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분할되었습니다. 폴란드인들은 이런 상황 아래에서도 폴란드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폴란드의 문화와 언어를 지키려 노력하였습니다.

쇼팽은 저항과 독립의 갈망이 팽배하던 바르샤바의 공기를 호흡하며 성장했습니다. 1830년, 제정 러시아의 학정에 대항하여 바르샤바에서 혁명이 일어납니다. 쇼팽은 11월 혁명이라 불리는 이 항거가 일어났을 때 오스트리아 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쇼팽은 직접 항쟁에 참여하지는 못합니다. 대신 음악으로서 조국 폴란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 후 쇼팽은 다시는 조국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는 지금도 파리의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의 심장만은 코냑에 담긴 채 폴란드로 옮겨져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발라드 1번 작품 23은 강대국들에 국토를 빼앗긴 폴란드인의 깊은 슬픔을 표현하듯 장중하지만 가라앉은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크지 않은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는 격정을 토해냅니다.

격랑 후에는 다시 아름다운 멜로디가 이어집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피아노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슬픔과 애잔함과 망설임, 그리고 환희의 감정을 차례로 만나는 것 같습니다.
대구시교육청에는 하루에도 많은 분들이 교육과 관련된 의견과 민원을 가지고 방문하고 있습니다.

민원실에서는 방문객들을 위해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잠시지만 쇼팽의 발라드 1번이 흐르는 가운데 의견을 나눈다면 좀 더 아름다운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혹여 민원 때문이 아니더라도 지나는 길에 민원실에 들러 따뜻한 녹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쇼팽의 녹턴 20을 감상하신다면 이 겨울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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