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지공'을 어찌 할꼬

홍헌득 편집국 부국장
홍헌득 편집국 부국장

70대 중반인 ㅂ씨는 가급적이면 이른 아침 시간에는 외출하지 않는다. 지인 만날 약속을 잡을 때도 오전 시간은 피하려 한다. ㅂ씨가 아침에 버스를 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다. 자신처럼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굳이 복잡한 시간대에 나갈 이유가 뭐 있느냐는 거다. "바쁜 출퇴근 시간 젊은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 아닐까요. 괜히 눈총까지 받아가며-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그런 분위기도 느껴진단다-버스 탈 필요는 없으니까요."

ㅂ씨처럼 자발적으로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이용을 삼가려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는 한편으로, 어르신들의 대중교통 이용과 관련한 세대 간의 갈등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바쁜 출근 시간 안 그래도 복잡한데 어르신들이 너무 많아 힘들어요. 나도 좀 앉아서 가보고 싶거든요." "자리 양보를 안 해주면 호통을 치기도 해요.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니 싫죠." "경로(노약자)석이 엄연히 마련되어 있는데 왜 일반석 쪽으로 오셔서 눈치를 주는지 모르겠어요. 그럴 땐 자리를 양보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이들 불만의 저변에는 "공짜로 타는 주제에…" 하는 의식이 깔려 있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도시철도 무임승차는 뜨거운 감자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전국 6대 도시의 지난해 도시철도 적자액이 6천억원을 넘었다고 한다. 그 적자액의 상당 부분이 무임승차에서 비롯되었다는 목소리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지공거사'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그 적자액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를 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도 점차 증폭되는 모양이다.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지자체들은 노인들의 무임승차가 교통 복지이니 당연히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고, 정부는 정부대로 도시철도가 없는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들며 국비 지원은 어림없다며 버틴다.

적자 규모가 갈수록 늘어나는 데도 누구 하나 먼저 나서 선뜻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지 않는다. 전면 무임승차는 이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수정이 불가피한 데도 노인들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폭탄 돌리기만 계속되고 있다.

몇 십 년 내에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노인 인구로 채워지게 된다고 하니, 지금부터라도 이 문제는 하루바삐 매듭짓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정부가 복지 비용으로 생각하고 적자를 보전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상당수는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고 요금을 할인해주는 방안을 제시한다. 제도는 유지하면서 수혜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70세로 높이자고도 한다.

무임승차가 노인들의 이동권과 관련한 복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적자 폭을 지자체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정부에서 어느 정도 적자를 보전함과 함께 출퇴근 시간에 한해 무임승차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복지도 지키고 적자도 어느 정도 줄이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아침저녁 2, 3시간 정도씩 무임승차를 폐지하면 대중교통 이용객 분산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어르신들의 이동권도 크게 훼손하지 않을 것이다. 운영 적자를 줄이는 데도 조금은 기여할 수 있을 것이고. 영국이나 프랑스 등 이런 방식으로 무임 혹은 할인을 유지하는 나라들도 있으니 연구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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