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오늘은 무얼 먹지'라는 고민을 한다. 이럴 때 주로 찾는 음식이 잔치국수다. 별도의 찬이 없어도 한끼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북 경주 서면(옛지명 아화)엔 오래된 국수 공장이 하나 있다. 1968년 문을 연 '경주아화전통국수'가 바로 그곳이다. 수십 년 전 아화에는 국수 공장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문을 닫아 이 집만 남았다. 아버지에 이어 국수를 만들어오고 있는 김영철(49) 경주아화전통국수 대표는 "만드는 일은 더디지만 전통국수의 맛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했다.

◆아화 지역에 마지막 남은 국수공장
1대 김방구(지난해 작고) 사장은 젊은 시절 강원도 탄광에서 일했다. 어느 날, 갱도가 무너져 다리를 다쳤다. 고향 경주로 돌아온 김 대표는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았으나 불편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힘을 쓰는 것보다 평생을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끝에 국수공장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당시 아화에서는 국수공장이 여러 개 있었지만 틈새를 뚫어보기로 했다.
경주에 있는 국수공장에서 일을 배운 김 대표는 1968년 공장을 차려 '오리표 국수'란 이름으로 국수를 생산했다. 공장 직원이라야 김 대표와 부인 단 둘뿐이었다. 처음엔 국수를 만드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국수는 밀가루와 소금, 물로 반죽해 면을 뽑는데 반죽이 문제였다. 물을 많이 넣으면 차지고 맛은 있는데, 면을 뽑기가 힘들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김 대표는 마침내 황금 비율을 찾아냈다. 그러나 날씨가 문제였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애를 써서 만들어 놓은 국수가 날아가 버렸다. 엉망이 된 국수는 버려야 했다. 또 봄이나 가을이면 건조한 날씨 때문에 국수가 너무 빨리 말라 끝이 꼬부라져 상품성이 떨어져 버려야만 했다. 여름이면 습기가 많다 보니 잘 마르지 않아 애를 먹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말리는 시간이 배 이상 오래 걸렸다.

김 대표는 열심히 일했다. 차츰 맛있는 국수 공장으로 소문이 나면서 사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국수 공장은 하나둘 모두 문을 닫았다.
김 대표는 오남매를 뒀다. 그 중 넷째가 2대 김영철(49) 대표다. 어릴 적 김 대표는 부모님의 희망이었다. 착하고 성실했으며 공부도 곧잘했다. 서울서 대학을 다녔다. "대학 2학년 방학 때 집으로 내려왔다. '힘은 들겠지만 잘만 하면 국수로 인생의 승부를 걸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에서 뽑혀 나오는 국수 가닥이 마치 희망의 끈처럼 보였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부모는 예상대로 반대했다. 그러나 영철 씨의 생각은 대학 졸업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마침 형들도 가업인 국수 공장을 이어받을 의사가 없었다.
1999년 회사 이름을 '아화제면'으로 바꿀 때부터 아버지 일을 거들기 시작한 영철 씨는 2004년엔 공장의 대표가 됐다. 주먹구구식의 회사 경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택배를 시작했다. 그의 영업 전략과 노력에 힘입어 국수 공장은 날날이 발전했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불행이 닥쳤다. 2009년 전기합선으로 공장에 불이 나고 만 것이었다. 국수 성수기인 5월에 일어나 손해는 컸다. 공장이 정상 가동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자신을 믿어준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릴 수 없었다. 그의 자존심 또한 허락하지 않았다. 2014년 '경주아화전통국수'로 상표를 바꾸는 한편 새로운 맛을 위해 반죽과 숙성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판로 역시 전국으로 넓혀가기 사작했다.최근에는 현대식 기계로 바꾸었다. 그 기계로 생산한 국수 맛에 변화가 생겨 잠시 매출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빠른 시간 내 예전의 매출을 되찾았다.
현재 아화국수는 중·소면을 비롯해 칼국수, 메밀국수를 생산하고 있다. 아버지의 맛을 고수하는 한편 젊은층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파프리카와 단호박, 자색고구마를 섞어 맛과 색깔을 일신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경주에 식당을 오픈했다. "상품에 대한 자신이 있다. 국수를 직접 먹어보고 구매하라란 마케팅이죠. 인지도도 높아지고 매출도 신장되고 있습니다."
아화국수는 현재 마트에 납품하는 한편 택배로 대구를 비롯해 서울, 부산 등 전국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 성실과 끈기로 이어온 아화제면
아수국수는 밀가루 , 소금, 물 외엔 어떤 참가제도 사용하지 않는다. 황금배율은 아버지의 노하우와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 계량화도 꾀했다. 유명 국수 공장의 비법치고는 단순하다. 영철 씨는 숙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만 그의 진짜 노하우는 바로 자연과의 소통에 있다.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소금 농도는 물론 반죽에 들어가는 물의 양과 국수 두께까지 다르게 만든다고 한다. 바람이 강하고 습도가 높으면 물을 많이 넣어 반죽을 약간 질게 만들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면 물을 적게 부어서 반죽을 되게 한다. 국수를 건조할 때도 날씨에 따라서 국수 가락 너는 간격까지 다르게 한다. 국수가 완성되려면 맑은 날엔 이틀, 흐린 날엔 사나흘도 걸린다. 그래서 아화국수는 한결같은 맛을 낸다고 했다.
영철 씨는 찰보리를 섞은 국수를 만들고 있다. 아직 최적의 비율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마 내년 봄이면 새로운 찰보리구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철 씨는 전통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옛날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가 먹던 국수가 바로 이러하다는, 진정한 우리의 전통 국수가 바로 이런 맛이라고 알려주고 싶다"면서 "숙성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 차진 맛을 내기 위해 전분을 밀가루에 섞어서 만드는 국수보다 맛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영철 씨는 자신이 만든 국수 맛이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 여전히 마음이 설렌다고 했다. "제가 끝이 아니라 후대까지 이어간다는 생각으로 국수공장을 운영할 것"이라면서 "우리 전통의 맛을 그대로 지켜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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