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이부망천'이 아닌 '인재의 천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이 지닌 에너지는 무섭다. KBS 한 프로그램에서 행한 말에 관한 실험 사례가 있다. 양파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긍정적인 음악을, 다른 쪽에는 욕설을 들려주는 실험이었다. 온도, 습도, 빛과 같은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설정해 다른 변수들을 통제하였다. 긍정적인 음악 속에 둔 양파는 거침없이 싹이 자랐다. 반면 욕설을 듣는 환경의 양파는 싹이 자라지 않거나 조금 자란 것이 전부였다. 양파에도 말의 에너지는 강력하게 전달된 것이다.

대구에서는 너무 먼 인천시교육청에서 연락이 왔다. 앞으로 쓰이게 될 교육청 슬로건이 필요하단 작업 문의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문의로 생각했다. 서울에도 광고 회사가 많은데 이토록 먼 대구의 광고 회사에 일을 맡겨 줄지 몰랐다. 대구까지 내려오겠다는 장학사님들을 만류하고 필자가 서울에 올라가 미팅을 진행했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만난 그들은 말의 에너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강력한 한 줄을 필자에게 원했다. 운 좋게 계약까지 진행되었다.

작업을 시작하며 찾아본 인천의 이미지는 매우 좋지 않았다. 2018년 6월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이라는 단어가 매스컴을 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졌다. 게다가 부정적인 이미지의 전파 속도는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훨씬 빠르고 넓다. 슬로건 작업을 하면서 도무지 '이부망천'이라는 강력한 단어를 이길 문장이 보이지 않았다. 필자의 회사는 아주 난감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광고가 마약과 같이 중독성이 있는 건 언제든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나에게 유리한 관점으로 상황을 재설정하면 그 판을 뒤집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광고의 묘미이다. 이번 작업 역시 어떻게 우리 쪽에 유리하게 관점을 바꿀까 생각하다 '이부망천'처럼 앞글자 줄임말에 주목했다. 줄임말로 상처를 받았다면 줄임말로 상처를 치료하자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말이 '인재의 천국'이었다. 이미지를 만들 때 '인' 자와 '천' 자에만 의도적으로 색상을 넣어 '인천'이 두드러지도록 디자인했다. 멀리서 보면 '인천'이라는 단어만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인재의 천국'이라는 전체 문장이 보였다. 이 슬로건을 쓰고 광고주가 거절할 수 없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디어 발표일, 전날 인천에 올라가 하루 묵고 오전에 발표를 진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준비해 간 몇 가지 시안 중 광고주는 이 문장에서 박수를 쳤다. 행복, 자랑스러움, 함께, 도약이라는 구구절절하고 싫증이 나버린 단어보다 간결함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슬로건은 공감에 있어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인천이 인재의 천국이라고?' 광고의 기술에서 '공감'이 가장 중요하지만, 필자는 이번 작업에서 공감은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공감보단 씨앗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서두에 '말이 씨가 된다'고 쓴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왕이라 부르면 그 사람의 행동이 왕이 되는 것처럼 인천이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인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망천'이라는 씨앗을 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재의 천국'이란 씨앗을 가슴에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 자신들이 그 증거가 되어 주면 좋겠다. 오늘부터 인천은 망천이 아니라 '인재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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