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와 극적으로 어긋나는 상황을 소재로 한 영화와 소설이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두근두근 내 인생'이 그들이다. 두 작품 모두 노인의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겪는 가슴 아픈 사연을 다룬다. 차이점이라면 '벤자민 버튼'이 노인에서 아이로 노화가 역행하는 가상의 내용인데 반해 '두근두근'은 아이에서 노인으로 노화가 가속화하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노화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누구나 겪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노화 역시 작품만큼은 아니어도 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와 평행을 달리는 건 아닌 듯하다. 주변만 봐도 겉으로 보이는 나이가 제 나이보다 훨씬 많거나 적게 보여 우리의 허를 찌르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노화의 속도가 개인마다 차이 나는 이유는 무얼까. 노화의 원인에서 그 이유를 밝히려는 연구가 세포와 분자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생명체의 세포에는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있다. DNA는 세포가 분열할 때 기다란 실처럼 생긴 형태가 돌돌 감겨 짧은 막대 모양의 염색체로 된다. 하나의 세포가 나뉘는 세포분열은 모든 염색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새로운 세포에 똑같이 전달되는 과정이다. 이때 각 염색체는 자신의 DNA를 보호하고 인접한 염색체들과 엉겨 붙지 않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텔로미어'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에 있으며 이곳에는 DNA를 구성하는 A, T, G, C라는 4종류의 염기가 특정 서열(TTAGGG)로 수천 번 반복해 있다. 이 부위는 세포 분열 시 DNA를 보호하는 골무 같은 기능을 한다.
텔로미어는 나이가 듦에 따라 길이가 짧아진다. 이는 세포가 분열할 때 DNA 복제가 말단까지 이루어질 수 없어 매번 200개 정도의 염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텔로미어 염기 수는 태어날 때 1만 개 정도지만, 35세에는 7천500개, 65세가 되면 4천800개 정도로 줄어든다고 한다. 텔로미어가 너무 짧아지면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노화되고 질병에 취약해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줄어드는 텔로미어 길이를 멈추거나 연장할 방법이 있을까. '텔로머라제'라는 효소는 DNA 복제 시 텔로미어의 염기를 복제해 그것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막아준다. 일반 세포에는 거의 없고 줄기세포와 생식세포에만 있다. 그러나 텔로머라제는 양날의 검이다. 분열을 멈추지 않는 암세포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2009년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제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블랙번은 최근 '늙지 않는 비밀'이라는 저서에서 나이가 듦에 따라 짧아지는 텔로미어 길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적 요인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중 관심을 끄는 것이 스트레스다.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된 만성질환 자녀를 간병해 온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그들의 텔로미어 길이와 텔로머라제 양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더 짧고 적었다. 이는 다년간 지속되는 심각한 스트레스는 텔로미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스스로의 사고 습관을 인지하고 스트레스 탄력성을 높이는 명상 같은 행위를 통해 텔로미어가 더 안정되고 길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 밖에 운동, 수면, 식습관 등이 텔로미어 길이에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연구 사례들을 알려주며 나이 듦을 촉발하거나 지연시키는 요인이 우리 생활습관과 관련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소설 속 아이가 앓는 '소아 조로증'은 세포 내 핵막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유전자 변이로 정상적인 세포 분열이 저해되어 생기는 질환이다. 일반적인 노화 속도의 개인차도 결국은 새로운 세포를 얼마나 오래 잘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듯하다. 다행인 것은 그것이 우리의 선택과 노력으로 어느 정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균형은 결코 어긋나서는 안 될, 질적인 삶을 위한 첫 번째 요건이다. 활력이나 탄력, 비상이나 도전 같은 단어를 한 번도 가슴에 품어볼 수 없는 삶을 산 소설 속 아이처럼 육체적 고통이 정신을 지배하는 삶이나 정신적 질병이 육체를 무너뜨리는 삶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너무 빨리 나이 들지 않게 나이 들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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