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수능이 끝났다. 학모 모임에서 만난 엄마는 힘든 과정을 이겨낸 딸래미 생각에 눈물짓고, 아이 학원 선생님은 실력이 더 좋은 인문계고 제자가 특성화고 졸업생보다 좋은 대학에 못 가는 현실을 비판하고, 동료 교수님은 전교 1등에 수능도 잘 본 아들이 의대를 안가겠대서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라고 하셨다. 제각각의 표정으로 다가오는 올해 수능이다.
제자가 찾아왔다. 내가 부학장할 때 속도 많이 썩히고, 면담도 제일 많이 했던 학생 중 한명이었다. 메말라가던 얼굴이 이제는 환하게 피었다. 유급을 많이 해서 나이 제한으로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갔었는데, 휴가차 나왔다가 인사하러 왔다고 씨익 웃으며 커피 한잔을 내민다. 소위 수성구 명문고에서 현역(재수나 삼수가 아닌 고교 졸업 후 바로 입학)으로 입학한 우수한 학생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학입학할 때 부모님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꽃다발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예과 2학년때 시작된 유급은 연이어 계속 되었고, 의사국시 대비 성적 하위권 학생 면담 대상자까지 오르게 되었다. 내가 부학장 자격으로 한 첫 면담에서 유급을 여러번 한 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활발하고 곧잘 웃기도 하길래 '유급은 해도 성격은 좋다' 싶었는데, 두 번째 면담에서 꺼낸 얘기는 충격이었다. "교수님, 전 루저(loser) 쟎아요."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유급을 여러번 했다 해도 의대 학생들은 성적으로는 대한민국 최상위그룹이다. 누구보다 사회에서 잘 쓰일 수 있는 녀석이 무한경쟁속에서 멘탈이 무너지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소중한 젊음을 허비하고 있는게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부학장을 하면서 정말 많은 학생들과 면담을 했었다. 면담을 하면 할수록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1등하는 학생, 72등하는 학생정도로 내 머리에 인식되어 있던 학생들이 외톨이 홍길동, 가정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하는 김철수로, 이름을 불러주어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말처럼 꽃으로 다가왔다. 학생들은 방황하고 있었다. 의대생은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을만큼 부모님의 지도와 보호아래 공부만 하던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성인이라는 이름하에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했다. 20년 인생에서 그건 이 학생들에겐 가장 익숙하지 않은 거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실패를 해 본 경험이 드물었다. 성적통계를 내보니 상위그룹보다 하위그룹에 월등하게 현역 학생들이 많았다. 삼수로 입학한 학생에게 어떻게 공부를 잘하냐고 하니까, '또 실패할까봐 열심히 하다 보니 1등도 하게 되더라'라고 했다.
반면 현역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살아오면서 해본적이 없는 뒤늦은 실패에,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모른 채, 소위 멘붕에 빠지거나, '난 루저야'라고 침몰해 버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학모모임에서 내가 만난 엄마들은 누구 집 아들이 이번에 서울대를 갔다, 우리 애보다 공부 못하던 애가 재수하더니 의대를 갔다, 이런 얘기들로 꽃피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서 시작이다. 부모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들의 타이틀에 목맬 때, 우리 아이들은 그 타이틀을 따느라 정작 사회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중요한 것들은 놓쳐버리고 사회로 나오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하는 11월 끝자락이다.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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