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진근 작가, 방송PD → 대학교수 → 수필가·화가!!

인생 3모작의 삶을 살아가는 최진근 작가

최진근(73) 작가는 68세 늦깎이로 그림 공부를 시작해 올해 대한민국 신조형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선정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에 마련한 화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최진근 작가. 석민 선임기자
최진근(73) 작가는 68세 늦깎이로 그림 공부를 시작해 올해 대한민국 신조형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선정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에 마련한 화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최진근 작가. 석민 선임기자

최진근(73) 작가(수필가·화가)의 가장 행복한 시간은 깊은 어둠과 함께 찾아온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에 아파트 방 한칸을 따로 떼어 만들어 놓은 화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 그 자체이다. 68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시작한 그림 공부가 이처럼 고마울 순 없다.

정말 무엇을 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에 생뚱맞게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스승인 최영조 화백(동국대 명예교수)의 권유를 따르길 잘 했다. 지금도 매주 목요일이면 국민연금공단 유화반에 출석해 최 화백으로부터 지도를 받는다.

시작은 늦었지만 배움의 과정은 치열하고 성실했다. 그림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만인 2016년 1월 한국교육미술협회 전시회에 첫 출품했고, 그해 3월 경일대 새마을아카데미 원장을 끝으로 은퇴한 뒤, 10월 첫 개인전을 열었다. 드디어 올해 4월 대한민국 신조형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선정되었다. 이제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 단계를 넘어 자기 나름의 작품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올해 경기도 광주의 장애인특수학교인 동현학교와 대구 북구 상록뇌성마비복지회관에 20호 짜리 '황매산의 봄'과 '봄이 오는 길목' 작품을 각각 기증했습니다. 장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의미로 '봄'을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엿보기 위해 전시회에 더 자주 가게되고 부부간 대화도 많아졌습니다."

▶50대 초반, 은퇴 후를 고민하다

최 작가는 방송국PD 출신이다. 1973년 KBS에 입사한 뒤, 주로 교양프로그램 제작을 맡았다. '대구춘추' 'TV주간지 낙동강',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는 '경북춘추(200회 이상 제작) 등이 대표작이다. 대구총국에서 주로 근무하면서 음악, 미술, 서예 등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가 많았고, 틈이 나면 봉산문화거리를 찾았다.

서울본사에 근무하면서는 '생방송 여성토론' '여의도 법정' '열린사회 시민광장' 제작을 맡았다. 당시 교양·토론 프그램은 양한방 갈등, 청소년 흡연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루었다. 그만큼 방송사 내외부로부터 압력과 스트레스가 심했다. 제작방향과 편집 내용을 놓고 제작진과 심의실, 이익단체들 간 옥신각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어느날 여의도에서 PD끼리 술을 마시며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툭 내뱉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태어난다면 화가가 되고 싶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화가가 되고 싶다.' 말의 업(業)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화가가 됐으니 말이죠."

1995년 서울에서 다시 대구로 오면서 편성제작국장을 맡았다. 정년을 10년 앞둔 시점이었다. 중년의 직장인이면 누구나 그렇듯 은퇴 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 없이 막막한 것 또한 현실이었다.

▶'인연'의 힘은 세다!

최 작가는 1997년 방송국을 떠나 경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이듬해 구미시의 요청으로 대학에 새마을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새마을운동은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던 1970년대 KBS에 근무하면서 새마을운동 관련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당시 '공·민영 새마을 방송작품 합동 콘테스트'에서 두 번이나 우수상(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이 계기가 되어 기획실장 겸 새마을연구소장을 맡았고, 2007년 새마을아카데미가 개설되면서 원장까지 겸임하게 되었다.

새마을운동 및 지역사회개발 관련 연구논문집 발간과 이론 개발 뿐만 아니라, 국내 새마을지도자 2천여 명과 85개국 1천500여 명의 외국인 새마을지도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했다. 중국, 필리핀, 베트남, 중앙아시아 각국의 현지 연수까지 포함하면 4천여 명의 외국인 새마을지도자를 육성했다. 덕분에 대학교수 정년을 마친 뒤에도 5년이나 더 새마을아카데미 원장으로 새마을운동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현재는 새마을세계화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교수 정년을 마치고 새마을아카데미 원장으로 있을 때, 최영조 화백이 그림 공부를 본격적으로 권유했습니다. 최 화백님과는 1980년대 방송국PD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죠. 방송에 가끔 출연하셨는데, 자상하고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2000년 초반부터 스케치북을 사들고 다니며 글적글적 하기는 했습니다."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데는 부인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신이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악기를 하는 것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낫다. 미술을 하면 작품을 남길 수 있고, 선물을 할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해서 아파트 방 한칸은 서재(2012년 수필 전문지 에세이스트 등단)로, 또 다른 방 한칸은 화실로 바꾸었다.

최 작가는 "초기에는 정물이나 시골풍경을 주로 그렸지만 요즘에는 '산'을 그리고 있다"면서 "청주 온센아트센터 개관기념 '2019 송년 2020 신년 초대전(12월 10일~2020년 1월 10일)에 초청받아 막바지 작품 준비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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