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된 루프에 낙엽들이 소복합니다. 11월의 고백 같고 표정 같기도 합니다. 매년 보내도 처음 보내는 가을처럼, 모든 사랑이 첫사랑인 것처럼, 낙엽은 가을이고 추억이고 그리움입니다. 뒤척이고 뒤척이는 모습은 당신에게서 시작되어 당신에게로 돌아가려는 몸짓일까요? 아무 말 걸지 않으며 슬쩍슬쩍 지나는 행인들 이내 시선을 돌립니다. '이별'의 아름다움은 이 '별'에서 원래의 '별'로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해 둘게요.
떠나가는 11월은 이상한 솔직함에서 나오는 전염병 같고, 우수수 내 몰린 상처를 펴서 말리는 것도 같습니다. 혈압이 올라 퓨즈가 나간 것 같고, 미친 척하고 한번 웃어보는 것도 같습니다. 죽은 풀무치 소리를 내며 프로판가스가 자꾸 새어나고. 우리 몸의 잎과 귀가 얇아지는 '11월은 불안하다'고 서정춘 시인은 말합니다. 당신에게서 와 아직 당신에게로 돌아가지 못한 말씀들이 11월의 끝을 붙잡고 있습니다.
10월은 열매가 무르익고 5월은 꽃이 만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체로 10월과 5월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 두 달에 대한 시나 노래도 많지만, 이 두 달에는 결혼식도 많습니다. 또한 12월은 연말의 정취나 송년회 스케줄로 바쁩니다. 그러나 10월과 12월 사이에 낀 11월은 별로 조명 받지 못하며 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딸과 막내딸 사인 태어난 것처럼, 특별하게 기억되는 날이나 노래도 없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져 건조한 몸이 가렵습니다. 속수무책 떨어지는 잎들로 생이 가려운 11월, 가려운 생을 털어내느라 나무들도 괴롭습니다. 당신에게 가 닿으려고 몸에서 무게를 덜어내는 11월, 당신에게 주려고 뭔가를 뒤적뒤적 자꾸만 주억거리는 11월, 어쩔 줄 몰라 감정의 문을 닫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색의 단풍도 좋지만 마지막 잎만 남은 앙상한 가지도 좋습니다. 황금물결 넘실대는 들판도 좋지만 가을걷이 끝난 휑한 빈들도 좋습니다.
길 가다가 소복한 낙엽이 발에 걸리면 아무생각 없이 걷어차게 됩니다. 지나는 강아지 꽁무니에 시선이 따라가기도 합니다. 낙엽이 머문 자리에서 또 걷어차고, 멀뚱멀뚱한 강아지에게 왈왈, 추파를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또 차 달라고 떼를 쓰며 달라붙는 낙엽들을 봅니다. 맞고도 랄랄랄 춤을 춥니다. 이처럼 11월은 아무 생각 없이 시작되고 아무 생각 없이 끝납니다. 생각 없는 치다꺼리들이 어이없이 기쁘게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11월은 일종의 사계절적 푸가(fuga)인 셈입니다. 詩詩(시시)콜콜한 시름이나 부름이 우리가 잘 모르는 기교로 교차하고 있습니다. 타국에서 느끼는 근본적인 쓸쓸함이나 시름 같은, 11월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10월과 12월을 벌려 주기 위해 11월이 존재한다는 것은 더욱 의미 있어 보입니다.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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