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소설가 이연주씨가 소설집 '슬픔의 무궁한 빛깔'을 펴냈다. 10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돼 있으며, 모두 '슬픔'을 기본 정조로 하고 있다. 제목을 각각 따로 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첫 번째 작품 ▷자전거 훔쳐 탄 녀석, 은 작가의 고향 마을 절골(寺谷)의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옥실'이라는 두메 마을에서 같은 해 태어나 친남매처럼 자라던 세 아이(재훈, 순호, 소희)가 사춘기 시절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두 번째 작품 ▷세상에 없는 토끼와 호랑이, 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지어미를 십년간 끔찍이 간호하지만,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은밀히 살해하고 세 아들을 고향 집으로 불러 형제간의 우애와 부부간의 사랑과 화합을 당부하고 그날 밤 자신도 아내의 뒤를 따른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 작품 ▷마지막 봄날, 은 6.25때 남편이 전사하고, 큰아들은 월남전에서 전사한 노파가 만년에 하나뿐인 작은아들이 사업 부도로 고향집이 경매로 넘어가자 더 이상 아들의 짐이 되지 않겠다며 아무도 모르게 스스로 깊은 산속의 동굴로 유폐되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네 번 째 작품 ▷항구를 떠나다, 는 불의의 사고(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나는 재혼을 포기하고 적극 아이들을 양육하여 훌륭히 키우지만, 믿었던 아들의 배신으로 절망한 나머지 뜻을 같이하는 일행들과 함께 '루카이노스의 섬'(죽음의 섬)으로 가기 위해 항구를 떠난다.
다섯 번 째 작품 ▷공처가 고상한(50대), 은 본명보다 '공처가'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고상한 선생'의 죽음을 계기로 그가 직장에서 은퇴하기 전 왜 공처가를 자처하며 살아왔는지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아내로 알려져 있던 인물의 정체도 밝혀진다.

여섯 번째 작품 ▷아주 특별한 조등(弔燈), 은 광복 전 징용으로 끌려간 지아비를 그리다가 육년 전에 별세한 나의 할머니와 6.25때 월북한 지아비를 그리다가 죽음에 이른 건넛집 할머니를 대비하면서 민족적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일곱 번 째 작품 ▷하룻밤 전쟁, 은 안골과 박골에 살던 할아버지(남자의 할아버지는 빨치산, 여자의 할아버지는 토호였는데, 6.25 전쟁 와중에 국군의 소탕작전으로 희생됨.)의 무덤을 찾다가 인연이 되어 결혼한 부부가 할아버지의 벌초를 앞두고 무덤의 호칭 문제로 다투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여덟 번 째 작품 ▷석류와 RAINBOW(레인보우), 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한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일곱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온 성유란(별명 석류)을 어른이 되어서도 흠모한다. 하지만 꽃뱀으로 변신한 그녀에 각각의 방법으로 사기를 당함으로써 어릴 시절의 환상이 무참히 깨지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그린다.
아홉 번 째 작품 ▷친구를 찾는데요, 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두 소년이 한옥에 혼자 외로이 사는 노인과 60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진정한 친구가 되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지만, 아들의 괴롭힘과 강요(한옥 매각)에 못 이겨 노인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가출하면서 그들의 행복은 깨진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뒤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그 노인을 찾고 있다.
마지막 작품 ▷시간이 지날수록 환해지는 풍경, 은 공시생이 우연히 조건이 좋은 아파트에 기거하면서 일어나는 해프닝과 일상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도전한 시험에서도 결국 낙방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임을 깨닫게 된다는 일종의 비극적 아이러니를 그린 소설이다.
'마지막 봄날'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이 모두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다. 사람살이에 묻어나기 마련인 슬픔을 다양한 빛깔로 보여주며, 10대에서 80대까지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슬픔을 보여준다. 눈물 징징 짜는 슬픔이 아니라, 사람살이의 운명 같은 슬픔이다. 순우리말이 작품에 많이 나타난다.
275쪽, 1만3천원.
▷소설가 이연주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199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1993년 '현대문학'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대구소설가협회장, 정화중·정화여고 교장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구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소설집 '그리운 우물'과 장편소설 '탑의 연가' '최 회장댁 역사적 가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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