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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패션연 논란, 이사회 견제가 필요하다

박상구 경제부 기자
박상구 경제부 기자

"요즘 버림받았다는 기분을 종종 느낍니다."

최근 취재차 만난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하 패션연) 직원은 근황을 묻는 인사에 이같이 털어놨다. 그는 패션연이 전례 없는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도 정부·지방자치단체·업계 모두 손을 내밀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대구 동구 봉무동에 있는 패션연이 바람 잘 날 없다. 지난 4월 주상호 전 원장이 경영난과 '제 식구 감싸기' 논란 등으로 임기를 2년 남긴 채 중도 사임한 이후 패션연은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 후임자를 찾지 못했다. 두 차례 공모를 진행했지만 처음에는 적격자가 없어 무산됐고, 이어진 2차 공모에서도 패션 관련 경력이 없는 군 장성 출신이 최고점을 받으면서 심사를 맡은 원장추천위원회의 밀어주기 의혹이 제기됐다.

또 지난 11일에는 연구개발보조금 횡령 혐의로 경찰에 압수수색을 당했고, 연구원 최대 자산인 건물은 내달 중 강제 경매에 들어갈 위기에 처했다. 정부 사업 축소에 따른 수입 부족으로 직원 월급도 온전히 지급하지 못하면서 패션연 직원들의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다.

패션업계 일부에서는 패션연 위기의 이유로 이사회를 꼽는다. 이사회와 패션연의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사회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매년 패션연 이사회가 원장 성과를 판단해 사직 권고까지 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원장조차 조직보다는 이사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경영난이 불가피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사 대부분이 패션·봉제업체 대표나 관련 학과 교수로 구성돼 있어 패션연이 시행하는 각종 지원사업의 직접적인 수혜자다. 원장에 대한 평가 척도가 조직 운영보다는 업계에 어떤 지원 사업을 얼마나 많이 주는지에 쏠려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경영난 당시에도 이사들은 구조조정과 긴축 운영만 얘기했을 뿐 직원들이 요구하던 건물 담보대출 등 실질적인 대책은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

이사들로 구성된 원장추천위원회가 4성 장군 출신 인사에게 최고점을 줘 논란이 된 것도 조직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전문성보다는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사회 내에서 견제 기능을 해야 할 당연직 이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구시, 경상북도 공무원으로 구성된 당연직 이사들의 참여도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원장 선임과 관련해 다섯 번 열린 원장추천위원회에 두 차례 참석한 대구시를 제외하면 다른 당연직 이사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패션연 내부에서 '버림받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패션 관련 연구원 이사회의 지나친 권한에 대해 견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업계에서는 오랜 화두다. 패션연 외에도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다이텍연구원 등 섬유 관련 기관 통합 논의가 있을 때도 업계 일각에서는 기관 통합에 앞서 이사회 통합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금처럼 패션과 봉제, 섬유 등 업종별로 나뉜 이사회를 합쳐두면 업계 이해관계에 몰두하는 것을 서로 견제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이유에서였다. 정부·지자체의 개입 역시 절실하다.

패션연 수입의 90% 이상은 정부·지자체 연구지원과제에서 나온다. 대구시 비중도 40% 수준으로 결코 적지 않다. 패션연은 수십억원의 시민 세금이 투입되는 기관으로서 대구시의 관리·감독은 필수다. 패션연이 정관을 수정해 당연직 이사들의 이사회 참석을 의무화하는 등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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