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는 참 친숙하고 만만했다. 한때 땅콩과 찰떡궁합을 이루며 맥주의 대표적인 안주로 이름을 날렸다. 오징어회 한 접시는 꽁치구이와 함께 횟집에서 대표적인 '쓰키다시'였다.
그러나 몇 년 사이 오징어는 '금(金)징어'가 됐다. 이제 한 마리에 1만원은 우습다. 오징어회를 '쓰키다시'로 내는 횟집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가끔 오징어회가 먹고 싶어 횟집에 가도 허탕치는 경우가 잦다.
이런 현상에 대해 '덜 잡히니 자연스레 비싸졌겠지'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그 배경에 중국 어선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들이 우리 서해에서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동해상에서도 수산자원을 초토화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오징어의 서식지가 북상하면서 불법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들이 북한을 통해 북한 수역과 울릉도 인근을 기습적으로 오가며 오징어의 씨를 말리는 것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04년 1차 북중어업협정 체결로 북한 수역에 들어간 중국 어선은 114척에 불과했지만 매년 그 수가 급증해 지난해에는 2천161척에 달했다. 북한은 대가로 중국 어선들로부터 수역 입어료를 받는다. 그 수입이 최대 7천만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점쳐진다. 북한과 중국이 '짝짜꿍'하는 동안 우리 어민들과 국민이 피해를 고스란히 보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중국이 싹쓸이한 오징어 상당수를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점이다. 동해안 오징어를 닥치는 대로 잡은 뒤 오징어값이 비싸진 우리나라에 되팔아 큰 이익을 챙기는 셈이다.
통계청 등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국에서의 오징어 수입량은 6만9천889t으로 우리나라 어획량(4만6천274t)의 1.5배를 넘었다.
중국 어선들의 조직화·과학화도 위협적이다.
오징어는 군집의 크기와 위치 추적이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인공위성과 탐사선 등을 활용, 오징어에 대한 정보를 대량 수집해 중국 어선들에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국 어선들의 오징어잡이 추적 정확도는 최대 90%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선들이 이에 맞서 오징어잡이 경쟁을 한다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다름없다.
어민들이나 관련 산업 종사자들은 절로 한탄이 나온다.
울릉도의 한 어민은 "중학교 졸업 후 60여 년간 오징어산업에 종사했지만 올해처럼 오징어가 없는 경우는 처음이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이들은 관련 산업의 공멸까지도 우려하고 있다.
어민들은 스스로 우리 바다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전국 일선 수협장과 어업인단체, 국회 농수산위원회 위원 등은 최근 '우리바다살리기 중국어선 대책 추진위원회'를 출범하고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등 수산업의 위기 타파를 위해 강력하게 대응할 작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절박한데도 정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북한과 중국의 행태는 국제적으로 명백한 위반행위인데도 눈을 감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어업권 판매가 주요 외화벌이 창구로 지목되자, 2017년 12월 대북제재 결의 2397호로 북한의 어업권 판매를 금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국 어선들이 북한과 우리 수역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포항의 한 수협 관계자는 "동해에는 서해보다 어민들이 상대적으로 적어 표로 연결이 덜 되다 보니 정부에서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가뜩이나 북한과 중국에 편향된 정부인데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도 애써 이런 문제를 외면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날 선 지적이 부디 허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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