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펭수 이야기가 떠돈다. 펭수에게 몰려드는 방송가의 러브콜에 이어, 최근에는 광고계에서도 서로 끌어가기 위해 난리가 났다고 한다. 물론 계보가 있을 정도로 EBS 캐릭터들은 많지만 신드롬까지 일으킨 캐릭터가 있었을까 싶다. 도대체 무얼 건드린 걸까.
◆남극 '펭' 씨에 빼어날 '수', 펭수 신드롬
"펭수의 인기에 숟가락을 얹고 싶다."
최근 영화 '백두산'의 제작보고회에서 하정우는 그렇게 말했다. 이 한 마디는 최근 펭수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뜨거운 지를 잘 말해준다. 펭수는 영화 '백두산'은 물론이고 '천문'에도 영화 홍보를 위한 콜라보 작업에 투입되었다. 하정우가 그렇게 말한 건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얘기다.
최근 나영석 PD도 펭수를 거론했다. 그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 '신서유기 외전 : 삼시세끼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첫방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100만 구독자가 넘으면 은지원, 이수근을 달나라 보내겠다고 한 공약이 실제로 이뤄질 것 같자 구독 취소 방송을 하면서 그는 "펭수를 구독하라"고 독려했던 것. 그만큼 펭수가 뜨거운 캐릭터라는 걸 반증하는 사례다.
나이는 열 살. 키는 210cm로 큰 남극 유일의 자이언트 펭귄, 펭수. BTS 같은 우주대스타가 되는 게 꿈이라는 이 펭귄 캐릭터는 머리에 미역 줄기를 매달고 오디션을 봐 EBS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EBS 캐릭터지만 지난 3월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를 개설하고 다양한 현장에서 활약하는 모습으로 조금씩 화제가 된 이 캐릭터는 지난 9월 드디어 빵 터졌다. 'EBS 아이돌 육상대회(이육대)'라는 동영상이 업로드되면서다.
물론 조금씩 그 귀여우면서도 할 말은 하는 캐릭터가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이육대'는 펭수의 인기를 훨씬 더 폭넓은 세대로 확장시켰다. MBC의 '아이돌 육상 대회'를 패러디한 이 영상에는 번개맨, 뚝딱이, 뿡뿡이 같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EBS 캐릭터들이 총출동했다. 그 캐릭터들은 지금도 인기가 있지만, 그걸 보고 자란 세대들이나 그 부모들에게도 향수와 추억을 자극했다. 이렇게 모든 캐릭터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펭수라는 존재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2030 성인들은 열광했다. '이육대' 영상은 1,2부를 합쳐 3백만 조회 수를 훌쩍 넘기며 본격적인 펭수 신드롬을 촉발시켰다.

◆방송사 대통합에 이어 어디든 환영받는 펭수
펭수의 인기는 지상파 같은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이 앞 다퉈 펭수를 모시는(?) 기현상을 만들어냈다. 물론 최근 들어 방송사 간의 프로그램 영상 공유는 일상화되고 있을 정도로 그 벽은 얇아졌지만 그래도 EBS 캐릭터가 MBC, SBS를 종횡무진 넘나든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펭수는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는 물론이고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도 출연해 맹활약했다. 이른바 방송사 대통합을 이룬 것.
펭수는 방송에 이어 앞서 말했던 영화계에도 진출했고 최근에는 광고업계에서도 블루칩으로 모셔지고 있다. 특히 펭수가 좋아한다는 참치와 가장 좋아하는 과자라 밝힌 빠다코코넛을 만드는 회사들의 광고모델 제의가 쏟아졌다. 또 최근 이랜드의 스파오는 펭수 나이와 같은 10주년을 맞아 내달 펭수 콜렉션을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EBS 캐릭터인지라 광고모델 제의에도 신중히 접근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펭수가 나선다면 어디든 환영하는 분위기다.
펭수에 대한 러브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23일 공개된 '펭수 외교부 장관 만난 썰' 편은 외교부 같은 정부 부처에서도 펭수의 인기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알리기 위한 영상이기도 했지만 펭수의 외교부에서의 맹활약은 이 캐릭터의 대체불가 매력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했다. 외교부 앞에서 일정을 치르러 나가는 강경화 장관을 보고 "여기 대빵이 어디 있냐?"고 묻는 펭수라니. 그 한 마디에 강경화 장관조차 빵 터졌다. 외교부에 입성해 6개 지역 외교관들을 만나 가진 펭수 해외진출 방안 토론회에서도 펭수 특유의 순발력에 외교관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펭수가 어디서든 환영받는 캐릭터가 됐다는 걸 잘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유튜브 시대에 부응한 캐릭터, 펭수
도대체 무엇이 펭수의 이런 어마어마한 신드롬을 만든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딱 하나만 짚어 얘기하라면 유튜브 시대에 부응한 캐릭터라는 점이다. '이육대'에 대거 EBS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펭수는 그들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교육방송에 걸맞는 교육적 메시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재미와 공감을 더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다. 특히 직장인들까지 펭수에게 빠져드는 건 수직적 사고 자체가 없어 어디든 거침없이 치고 들어가는 '사이다 화법' 때문이다. EBS 사장 김명중을 아랫사람 대하듯 이름을 부르고, MBC에 가서는 "최승호 사장님 밥 한 끼 합시다" 같은 말을 툭툭 던진다. 무엇보다 자신을 연출하는 PD 같은 '직속상관'을 마치 로드매니저 부리듯 한다는 건, 상하조직생활에 익숙해진 직장인들에게는 속 시원한 대리만족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펭수의 이런 화법과 거침없고 재미있으며 때론 귀여운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물론 PD의 고민의 결과물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생태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다른 EBS 캐릭터들과 차별화된 건 애초 펭수가 유튜브라는 새로운 공간을 통해 대중들과 만남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새로운 매체나 채널은 그 자체로 새로운 캐릭터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아는 연예인도 유튜브를 하게 되면 또 다른 모습과 캐릭터를 보이게 된다. 그건 그 채널이 요구하는 어떤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펭수는 어찌 보면 '유튜버' 혹은 '1인 크리에이터' 같은 캐릭터를 입게 되었다. 거침없이 할 말은 하고, 때론 공감 가득한 말로 대중들을 위로하며,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으로 뛰어들어 그 곳에서 부딪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유튜브 스타 같은 면모는 어째서 펭수가 방송사 대통합 같은 걸 보다 쉽게 이뤄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EBS가 강조되기보다는 유튜브 스타 같은 면모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상파들조차 펭수 섭외에 너도 나도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펭수 신드롬을 잘 들여다보면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가 만들어가는 대중들의 새로운 욕망의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저마다 할 말은 하고 싶고 또 공감 받고 싶으며 나아가 유튜브 스타 같은 걸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그런 욕망들이 거기에는 어른거린다. 물론 그런 욕망을 건드린다고 해도 견고한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않겠지만.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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