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국내에서 이미 꽤 이름이 알려진 연출가 로베르 르빠주의 '887' 연극을 보기 위해 LG아트센터를 방문했다. LG아트센터는 공연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가 공존하는 곳이다 보니 구석구석에 볼거리가 많아 셀피의 배경으로 인기몰이 중이었다. 로비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넓어서 그런지 분주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조명과 무대 전체를 보는 것을 좋아해서 2층 객석을 선호하는 편인데 항상 앞사람 머리가 무대를 가리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 극장의 객석은 경사도가 높아서 시각선이 방해되진 않아 좋았다. 반면에 좌석은 폭이 좁아 어쩔 수 없이 옆 사람과 어깨싸움을 해야 하는 것은 아쉬웠다.
르빠주는 엑스마키나(고대 그리스극에서 사용된 무대 장치로, '바퀴 달린 수레' 를 이르는 말. 지금의 왜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라는 단체를 설립했는데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통한 혁신적인 공연을 만드는 것을 시도한다고 했다. 역시나 의 무대는 경이로웠다. 높이가 2미터 정도 되는 육면체의 무대 세트를 돌리기도 하고 펼치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가능했다. 그래서 무대 전환이 암전 없이 이루어졌는데 세트는 매우 섬세한 미니어처를 보는 것 같았다. 마치 걸리버가 소인국에 온 듯 르빠주는 작은 카메라를 들고 무대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카메라로 촬영되는 화면은 무대 전면에 중계되었는데 흥미롭고 기발한 장면들이 꽤 연출되었다.
이 연극은 르빠주가 직접 연출하고 출연하는 1인극으로 자서전적 성격을 띤다. 르빠주는 '시(詩)의 밤' 행사에서 시인 미셀 라롱드의 시를 낭송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시를 외우기 시작하지만 3페이지나 길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억력이 뛰어났던 옛 친구의 도움도, 기억의 궁전이라는 암기법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것은 뭘까? 자신의 핸드폰 번호도 기억하지 못하는 르빠주는 어린 시절에 살았던 아파트의 번지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360도 돌아가는 자신의 키 정도 되는 무대 세트를 돌리자 미니어처 같은 아파트가 나타난다. 자연스레 1960년대 퀘백으로 시간을 돌려놓는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평범한 이웃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택시기사가 된 아버지, 치매에 걸려 요양원으로 가야 했던 할머니…. 르빠주는 왜 과거를 불러왔을까? 퀘백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지켜보는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과거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왜 기억해야 할 것 들을 쉽게 잊는 것일까? 혹은 왜곡된 기억의 조각으로 이미 완성된 상상의 세계에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것일까? 르빠주가 시를 낭송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마 과거 퀘백과 우리나라의 어느 시절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인 농장주들이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영어를 쓰도록 강요했던 말, "speak white." 당신은 빨간 강요에 의해 기억해야 할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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