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에서 선물이 왔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 이름 붙었다. 뜯어본다. 수신자가 영해다. 영해라, 목은 이색 선생의 고향 괴시마을이 있는 곳이다. 찬찬히 다시 보니 '영해 옛 장터거리' 이야기가 나온다. '등록문화재'란 말도 더러 비친다. 그간 영덕의 등록문화재는 송천예배당이 유일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근대문화유산, 즉 등록문화재가 한 지역에 우르르 몰려있단 소리였다. 지난해 8월 '근대역사문화거리'라며 떠들썩했던 영주와 흡사하다. 다만 영덕 영해면이 등록문화재 수에서 수위에 올랐다는 거였다.
영해의 옛 장터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근대역사문화공간이다. 근대 한국인의 장터거리로 당시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곳이라는 게 문화재청의 평가다. 반어적이게도 낙후지역이라 받은 영예다. 일제 강점기 때 모습과 도로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은 덕분이었다. 개발이 있었더라면 진작 사라졌을 장터거리다.
◆사람이 살아야 건물도 산다
사람이 살고, 손님이 오고 가야 집이고 건물이다. 제 아무리 '근·현대 시기에 형성된 건조물 중에서 보존 및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히 필요한' 등록문화재라 해도 사람이 살지 않거나 효용성이 없다면 거미가 용케 알고 그물을 친다. 사실상 죽은 건물이다. 관리가 잘 안 된다는 말이다. 전국에 산재한 등록문화재들의 현주소다.
영해 근대역사문화공간에 있는 등록문화재는 11건. 개중에 지금도 활용되고 있는 곳은 영해양조장과 영해금융조합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영해양조장은 아직 막걸리를 빚어낸다. 등록문화재로 양조장 본분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손에 꼽는다. 경기도 양평 지평양조장, 충북 진천 덕산양조장, 그리고 이곳 영해양조장이다.
입구로 들어서자 달콤하면서 구수한 누룩향이 비강을 채운다. 시장기가 있었다면 한 줌 술찌끼라도 주워 먹었을 향이다. 1971년부터 이곳을 인수해 영업해왔다는 박장춘(78) 씨는 "술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인구가 줄어드니 큰 일"이라며 아쉬워했다. 그와 그의 부인, 그리고 아들까지 3명이 하루에 만들어내는 양은 750ml 들이로 150개. 하지만 다 팔리진 않는다고 한다. 박 씨는 오랜 기간 술을 빚어온 기술 그대로 누룩을 직접 띄워서 만든다고 했다. 한창 배달을 도맡았을 자전거의 건재를 기대했지만 세월의 녹을 어쩔 수 없었다.
박 씨는 더 많은 술을 생산하던 때의 물건들을 버리지 못했다. 보물창고 열 듯 양조장 뒤편 창고를 열어준다. 곡식껍질을 까주던 그 기계, 도정기가 수명을 다한 거대 포유류처럼 먼지를 뒤집어쓴 채 손님을 맞았다. 창고는 거대한 도정기에 맞춰 지은 공간이었다. 기계의 높이에 맞춰 지붕은 뚫려 있었다. 지금은 퇴역한 왕년의 용사들이 앉아 있는 곳이었다. 문득 서글펐다.
왕년의 보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오래된 앨범 속 장면이 재현되는 듯했다. 물건들의 역사가 보였다. 박 씨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물건들은 어느새 전성기 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284리터짜리예요. 독에 금이 조금 가 있다고 버릴 수는 없지요. 꿰매서 계속 썼지. 요즘에는 이만 한 독도 못 구해요. 이걸 꿰매는 기술자도 없어요."
술독에는 1945년산이라 적혀 있었다. 300리터 김치냉장고보다 발효가 잘 됐다는 항아리다. 큰 항아리는 용사들의 훈장처럼 꿰맨 자국들을 갖고 있었다. 거머리가 붙어있는 모양처럼, 철길이 이어지듯 연결돼 있었다.
◆근대문화유산 집합, 영해 옛 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옛 장터거리에 몰려있다. 영해양조장을 나와 한 바퀴를 둘러본다. 영해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돌았는데 금세 제자리다. 700m 정도로 짧다.
짧아도 강하게 뇌리에 남는다. 통상 등록문화재라면 적산가옥 등 왜색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곳은 전통한옥 구조의 건물이 대다수다. 옛 장터거리의 중심인 옛 영해금융조합 건물을 제외하면.
영해금융조합 건물은 삼척동자가 봐도 이질적이다. 현재는 농협 소유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1935년 준공된 건물이다. 어느 곳이든 금융회사가 있는 곳은 지역의 중심이었다. 원형 그대로였다면 유럽풍 건물로도 비쳤을 곳이다. 100년 뒤 지금 같은 모습일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막혀 있다. 창고로 쓰려고 5년 전에 손 본 것이라고 한다. 창문과 대문이 헐려 시멘트로 칠해진 건 아쉬웠다. 을씨년스럽다는 표현 외엔 떠오르질 않았다.
세바퀴 버스가 다니던 1960년대까지 활용됐다는 영해 버스터미널도 비슷한 처지였다. 외려 목재로 돼 있던 탓에 붕괴 직전이었다. 나무와 흙, 각목, 철판 등을 재료로 지은 건물이 자연사하면 이런 모습이리라 짐작됐다. 나무는 썩어가고 철판은 붉은 녹으로 덮여 어떻게 해도 살려낼 수 없을 듯 보였다. 2022년이면 이곳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있을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밖에 옛 영해의용소방대 건물, 옛 영해언론인협회 및 대구매일신문 지국, 천주교 예배당으로 쓰였던 옛 영해공소, 그리고 영해 장터거리에서 푸줏간과 백화점 등의 용도로 쓰였던 근대상가주택 5채가 등록문화재로 올랐다. 영덕군에서도 손봐야할 것이 많아 난제라고 했다.
◆신돌석과 문명기, 그리고 3.18 만세운동
영해 옛 장터거리 중심에 있던 건물 중 유독 깨끗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소설 '소나기'에서 시골 아이들 사이로 갓 전학 온 도시 소녀를 떠올리면 적당하다. 유난히 하얗던 공간은 '문명기'라는 이름과 연결된다. 깨끗하던 그곳은 충선사였다. 목화씨를 가져왔다는 문익점의 시호 충선공을 딴 사당이다.
친일파 사전에 등재된 문명기는 일제 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낸 광산 거부였다. 일본군에 군함을 사라고 거액을 냈다는 말도 따라 나온다. 문명기의 손자 문태준은 이 지역에서 4선 국회의원을 했다고 한다. 이들의 그늘이 지역에서 영향이 꽤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즈음에서 평민출신 항일 의병장 신돌석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신돌석과 문명기는 1878년(고종15년)생이다. 영덕을 기반으로 한 두 사람은 그러나 애국과 매국이라는 극단의 길로 갔다. 신돌석(1878~1908)은 30세에 요절했고, 일제 강점기 자본가 문명기(1878~1968)는 90세까지 살았다.
영해 옛 장터거리는 1919년 3월 18일 주민 3천여 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곳이라는 애국적 의미가 크다. 이곳에서 신돌석 생가가 멀지 않다. 생가가 복원된 건 1995년, 기념관과 사당이 선 게 1999년이다. 신돌석 장군이 순국한 게 1908년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게 먹으러 왔던 영덕에서 받는 氣
'기운이 좋다'는 말에는 힘이 실렸다. 기운을 얻었다는 이들의 몸짓은 눈에 띄게 큼직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부리는 묘술이다. 흔히들 '氣'라고 말한다. 영덕은 최근 '좋은 기운'을 관광 상품으로 내놨다. 좋은 기를 받기 좋은 땅이라는 것이다. 기 받기 관련 프로그램도 내놓을 기세다.
그러고 보면 영덕에는 유수의 기업이나 학교가 지어놓은 연수원이 적잖다. 대개의 연수가 술자리로 파하다보니 연례적으로 연수원에 가는 이들의 간증이 잇따른다. "거기서 술 마시면 해풍을 맞아선지 빨리 깬다"며. 물론 빨리 숙취에서 헤어나는 기운까지 품은 땅이란 뜻은 아니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풍경만 바라봐도 수련이 되는 곳들이 있다. 내가 보기 좋은 곳은 남이 보기에도 좋다. 터가 좋은 곳엔 어김없이 건물이 들어서 있다. 구성원이 아니므로 이용할 수 없대도 좋다. 근방에서 기운을 받는 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
칠보산 중턱에 삼성인력개발원이 2017년 들어섰다. 땅 잘 본다는 루머가 정설로 통하는 대기업의 연수시설이다. 그러지 않아도 칠보산은 칠보산자연휴양림으로 익히 명성을 알린 터였다. 등산마니아들 사이에선 고래불해수욕장 해안선을 감상할 수 있는 명승급 경관이란 말이 정설이었다. 공기도 가려서 들이마신다는 암환우들이 회복을 도모한다는 자연생활교육원도 2013년 들어와 있었다.
이밖에도 해안선과 인접한 곳에 안동병원복지수련원, 경찰수련원이 있다. 대학들도 줄지어 수련원을 세웠는데 사실상 경산지역 주요대학이 짰나 싶을 만큼이다. 영남대,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경운대, 금오공대가 영덕에 수련원을 만들어뒀다.
◆숲속 케렌시아, '여명'에서 챙기는 기운
도시에서 만날 수 없는 숲속 케렌시아, 영덕인문힐링센터 '여명'도 숟가락을 얹는다. 장육사와 700m 정도 떨어진 체험공간이다. 힐링과 치유가 테마다. 명상, 기공체조로 정신을 재부팅하면 건강음식으로 속을 채우고 치유 관련 인문학 강연 등으로 머리를 채운다.
힐링이 될 만한 건 뭐든 활용한다. 근래 들어 포토존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벌영리 메타세콰이어 숲길에 들어가 피톤치드 샤워를 한다. 바다가 있으니 어디든 힐링 공간이다. 고래불해수욕장 영리구역에 뻗은 1km 길이의 솔숲도 명품이다. 목재데크가 놓인 길을 걸으며 해풍과 솔향에 근심을 빼낸다.
속을 채우는 과정도 흥미롭다. '음식이 몸'이라는 철학을 풀어낸다. '선인식'이 대표 메뉴다. 녹두, 옥수수, 수수, 팥, 보리기장, 찹쌀, 현미, 차조, 멥쌀, 사과, 도라지, 신선초, 죽염으로 구성된 곡물가루에 따뜻한 물과 소금 등을 넣어 밥 대용으로 먹는다. 어디선가 많이 본 구성이다 싶더니 산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다큐예능에서나 보던 끼니다. 양은 조금이지만 속이 편안하고 활동하는데 무리가 없다. 신선이 된 듯 몸이 가벼워진다.
야채도 지역 유기농 인증 채소와 일반 유기농판매 상품을 재료로 한다. 집에서는 못해 먹겠다 싶은데 해독과 건강한 식습관에 중점을 둔다는 말을 듣자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솟는다.
공간도 두말할 것 없다. 장육사와 가깝다. '청산은 나를 두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라는 선시가 더 유명한 고려 말 고승 나옹선사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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