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시대의 소음/줄리언 반스/2017. 다산북스

진정한 예술인을 만나다

씩씩거리며 언덕배기로 올라오는 차 소리에 잠을 깼다. 소리의 주범은 다름 아닌 쓰레기 수거차다. 이틀이 멀다하고 고요를 깨우는 생활의 소리는 분명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소음이라고 할 수 있다.

허나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은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소음이라기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폭력과 부조리라는 소음으로 탄압받은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레닌 사후, 정권을 잡은 스탈린은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대대적인 탄압과 숙청을 단행하게 되는데 일명 '피의 숙청'이 그것이다. 이 소설은 그 시대를 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남희 작
우남희 작 '계산성당에서'

쇼스타코비치는 빅토르 쿠바츠키가 이끄는 지역 오케스트라와 함께 생애 첫 피아노 콘서트를 해 달라는 초청을 받는다. 그래서 세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러시아식으로 번안한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공연하는데, 그 공연을 본 최고 실권자인 스탈린은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고 혹평하며 금지 및 탄압을 한다.

스탈린 정권의 눈 밖에 벗어난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여행 가방을 들고 승강기 옆에서 매일 밤을 지새우며 과거를 생각하며, 미래를 두려워하며, 짧은 현재의 시간동안 담배를 피우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이 내 양손을 자른다 하더라도 나는 입에 펜을 물고서라도 작곡을 할 것이다."(p74)라며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진정한 작곡가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무게 앞에 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타협 없이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세계를 펼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스탈린에게 헌정하는 '숲의 노래'와 같은 선전용 음악과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예술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쇼스타코비치의 이중적 태도를 두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잣대로 권력층의 그늘 아래서 산다고, 기회주의자라고 감히 돌팔매질을 할 수 있을까. 친일 행적을 한 예술인들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들의 행적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들이라고 인간으로서의 내면적 갈등과 번민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국에서 태어난 줄리언 반스는 역사와 진실, 사랑이라는 주제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발표했는데 영국 소설가로는 유일하게 프랑스의 메디치상을 수상했으며 포스터상, 쿠텐베르크상 등을 수상했고,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수상한 맨부커상을 그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수상했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p135)에 밑줄을 긋고 머뭇거리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피아노 반주가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우남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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