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런 일을 해내셨어요?" 필자는 요즘 원로 예술가들을 만나면 이렇게 묻곤 한다. 자칭 '원로 전문가'라며 여러 예술가들의 이력을 줄줄 읊곤 하지만, 요즘처럼 그들의 '업적'이 놀랍게 되돌아봐질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문화예술만이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경쟁력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분야가 바로 문화예술이기도 하다. 현장 기획자들은 문화예술 사업을 기획하면서 '기대 효과'를 수치로 계량해야 할 때 특히 막막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해서 성과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 가끔은 그 가늠하기 힘든 수치 앞에서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있다.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 요즘의 실정이 이런데 근대기 예술가들, 그리고 원로예술가들의 활동 시대는 어땠을까. 그들이 지향하는 예술적 가치가 당장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근대기 예술가들은 만나 볼 수 없으니, 반갑게도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원로 예술가들을 만나 우문(愚問)을 던져본다.
"어떻게 그 시대에 대구시립합창단 창단을 이끌어내셨어요?" 대구시립합창단 장영목(86) 초대 지휘자는 필자의 새삼스러운 질문에 그저 허허 웃어보였다. "합창의 힘을 믿었지요. 그리고 주변에 도와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대구시립무용단 김기전(85) 초대 안무자의 대답도 비슷했다. "춤이 전부였어요. 한 가지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니 어느 순간 가까이 와 있더라고요. 물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어요." 이들의 짧은 대답 속에 긴 여운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1982년 12월 6일 자 매일신문 문화면에는 '대구의 오페라단-음악인의 역량 집결체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큼지막하게 보도되어 있다. 대구오페라단 창단 10주년을 맞아 기획한 이 기사는 '시립' 오페라단 창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면에는 인터뷰에 응한 당시 지역 4개 음악대학 학장들(김원경, 김금환, 김진균, 홍춘선)의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이처럼 이 땅의 여러 '선배' 예술가들은 후배들의 안정적인 활동을 돕기 위해서 뜻을 모았다. 기사가 나간 후 10년이 흐른 뒤에야 대구시립오페라단이 창단됐지만, 우리 지역의 예술가들은 후배들이 '돈' 걱정 없이 예술 활동에만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시립' 예술단 창단은 그중 대표적인 사례다.
1964년 12월 전국에서 세 번째 시립교향악단으로 이름을 올린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창단된 것도 1950년대 한국전쟁기 이후 교향악 운동에 힘쓴 예술가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1981년 대구시립합창단과 시립무용단, 시립국악단이 창단된 것도 1960년대부터 각 분야 예술 활동의 터전을 탄탄히 다진 뒤에 이뤄낸 성과다. 1998년 시립극단이 창단되기까지 연극인들이 기울인 노력은 또 얼마 만큼이었던가.
'시립'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예술단체의 사정은 이제 많이 나아졌다. 긴 세월 민간 예술단체를 이끌어온 예술가들의 의지는 더 존경스럽다. 1984년 창단된 영남오페라단을 1994년부터 이어받아 현재까지 이끌고 있는 김귀자 단장, 1991년 전국 최초로 민간 직업 오케스트라로 출발한 대구필하모닉의 박진규 이사장…. 이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 예술단체 대표들은 사재를 털어 단체를 이끌며 그들이 꿈꾸던 예술적 가치를 실현해왔다.
이 땅을 살아온 수많은 예술가들의 노력의 결실로, 우리는 연중 1천여 회의 공연이 펼쳐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곁에 당연히 있는 것 같은 예술가들, 예술단체들, 그리고 수많은 공연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이달에도 수많은 예술행사들이 펼쳐진다. 특히 이달로 창단 55주년을 맞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가 13일(금)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다. 19일(목) 펼쳐지는 대구시립합창단의 송년음악회에서는 장영목 초대지휘자가 객원 지휘를 맡아 오랜 연륜을 펼쳐 보인다.
연말을 맞아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원로 예술가로부터 들은 현답(賢答)을 나눠본다. "당당하라. 인연을 소중히 여겨라. 될 일은 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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