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신경아 지음/ 문학동네 펴냄

서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 다니며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전통 음악

신경아 지음
신경아 지음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이상한 일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들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이 못내 그립다. 저자의 눈과 귀와 마음을 입고 국경과 언어와 인종을 넘어 시원을 품은 오래된 선율들을 누리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인간은 본디 인간이기 때문에 존엄하다는 확신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소설가 황여정)

음악은 어디에나 있다. 여행은 때로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곳에서 더 큰 감동을 준다. 지구에는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국가가 있고, 이런 곳에서도 음악과 노래가 존재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대륙의 말리와 세네갈, 모리타니부터 유럽의 알바니아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서남아시아와 유럽 접경의 터키와 쿠르디스탄을 다니며 각국의 전통음악을 찾아 여행하고서 일종의 음악 기행문을 펴냈다.

쿠르드 소리꾼 뎅베지가
쿠르드 소리꾼 뎅베지가 '신부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유튜브 채널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갈무리

◆'즐기려고 좋아서 하는 음악' 가치 따르는 이들

아프리카 대륙의 말리에는 즉흥 음악 '세걀라레'(segalare)가 있다. 프랑스어도, 밤바라어도 아닌 이 단어는 정확하진 않지만 '즐기려고 좋아서 하는'에 가까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좋아서 즐기며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음악 본연의 모습에 가까운 뜻이다.

문득 누군가가 주도해 악기를 들고 마을 한 곳에 모이면, 그날부터 며칠이고 밤이면 밤마다 연주 대결을 펼친다. 그 중 하나가 새롭고 특별한 선율이나 기교를 선보이면 다른 참가자들이 미친듯 환호하며 각자의 악기로 이를 편곡하고 연습한다. 마지막에 합을 맞춰 보면서 신곡을 창작하는 식이다.

통상 우리가 아는 악보가 있거나 기승전결이 있는 음악이 아니다. 시작도 끝도 없고, 아무데서나 시작하고 맺을 수 있다. 해당 음악을 이끄는 리더가 그날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즉흥 연주하면 멤버들 또한 즉흥으로 맞춘다. 음반을 녹음해야 할 때가 와도 그들은 완성본을 어떻게 연주했는지 알지 못한 채 녹음 당시의 즉흥에 따라 다시 연주한다. "우리 음악은 세걀라레로 해야 해. 세걀라레가 아닌 것은 음악이 아니지."

'축구를 잘 하는 나라'로 우리에게 익숙한 세네갈은 사실 대중음악으로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나라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을 앞두고 세네갈 국가를 부른 바바 마알(Baaba Maal), 1998 프랑스 월드컵 공식 주제가를 부른 유수 은두르(Youssou N'dour)가 유명하다. 스포츠에 대해선 세네갈에 대해 상당수준 이해하는 한국이 그 나라 음악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는 게 아이러니하다.

세네갈 대중음악인은 말리 음악인들처럼 서양 음악을 무작정 따라하지 않는다. 서양 악기와 세계 주류 음악 장르를 받아들인 뒤 자신들의 전통 리듬과 창법을 바탕으로 한 댄스음악 음발락스(mbalax)를 만들었다.

음악을 그다지 장려하지 않는 이슬람교를 믿으면서도 일종의 염불인 지르크(아랍어로 '기억'을 뜻함)에 선율이나 반주를 붙여 노래하듯 기도한다. 영혼의 깨달음을 얻고 신과 합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지르크를 암송하는 것이라 믿어, 따로 모임을 하면서까지 지르크를 부른다. 사원 내에서만 이를 부르는 게 아니라 시장, 호텔, 택시 곳곳에서 음원을 재생하고 사람들끼리 모이는 족족 이를 부른다.

이곳에서 지르크는 고전적 방식의 아카펠라로, 타악기 반주에 맞춘 춤곡으로, 대중가요풍으로, 서양관현악 반주를 입혀서 등등 수많은 장르로 재창작되고 있다. 성직자가 직접 창작하거나, 일반인 작곡가가 곡을 써 성직자에게 헌정하기도 한다. 기독교 문화에서 전통적 가스펠과 CCM이 공존하듯, 세네갈의 이슬람엔 다양한 형태로 지르크를 향유하는 것이다.

세네갈의 한 지크르 모임에서 이슬람 신도들이 노래하듯 지르크를 부르고 있다. 유튜브 채널
세네갈의 한 지크르 모임에서 이슬람 신도들이 노래하듯 지르크를 부르고 있다. 유튜브 채널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갈무리

◆세계 음악 획일화 속, 태어난 곳에서 들은 음악

저자는 프랑스인 회사 동료의 차에서 우연히 들은 아프리카 말리의 음악을 계기로, 우리가 알지 못하던 다른 나라의 전통 음악을 찾아 여행길에 올랐다. 한국 민속음악을 찾아다니던 PD 남편이 은퇴하자 그도 함께 직장을 조기 은퇴했고, 리듬과 선율을 따라 세네갈과 모로코, 모리타니 등지의 현지인들과 어울려 스며들었다. 불안한 국제 정세 탓에 전쟁과 침공이 이어지는 가운데도 그들이 직접 들려준 음악은, 어디서도 듣지 못할 낯설고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전통음악은 그것이 태어난 땅에서 들을 때 그 감동이 배가된다. 그래서 저자의 여행은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을 찾아가 노래와 연주를 청하면, 그들은 놀랍게도 프로 못지않게 훌륭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신세타령이나 사랑노래 같은 것들에도 나름의 깊이가 있었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낯선 이를 편안하게 맞이했고, 때때로 맛있는 음식까지 후하게 대접했다.

어떤 곳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유입된 힙합과 팝이 전통음악을 대체하고 있었다. 저자는 "문명이 문화를 파괴하지 않는지, 기술이 인간을 파괴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것은 오늘날 인류의 의무다"라는 빌헬름 몸젠의 말을 인용한다. 이 책은 잊혀서는 안 될 아름다움에 관한 기록이다. 유튜브 채널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에서도 저자가 만난 이들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445쪽, 2만1천원.

신경아 지음
신경아 지음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 신경아는

대학에서 전공한 프랑스어로 꽤 긴 세월 밥벌이를 했다. 역마살을 누르며 월급쟁이로 일하다가 남편의 은퇴를 계기로 직장을 조기 은퇴하고, 일삼아 민속음악을 찾아 다니는 남편과 함께 오랫동안 꿈꾸던 세계음악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 틈틈이 음악축제 모더레이터로 일하며 여행지에서 만난 음악가를 국내 초청해 무대에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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