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패가망신(敗家亡身)의 지름길

 정중규  ㈜세스코 고문

정중규 ㈜세스코 고문
정중규 ㈜세스코 고문

옛날에 한 선비가 있었다.

박씨 성을 가진 이 선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과거 공부를 했으나 번번이 낙방했다. 어떻게 해서든 급제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가진 재산을 정리해 한양으로 올라가 연줄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당시 실세와 연이 닿아 시제와 모범답을 얻게 되었다.

시제(時題)는 "사희"(四喜), 즉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쁜 네 가지를 논하라"이고, 모범답은 "금방괘명시(金榜掛名時)"요 "동방화촉야"(洞房華燭夜)며 "타향봉고인"(他鄕逢故人)이요, "대한봉감우"(大旱逢甘雨)였다.

즉 인간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은 과거에 장원급제해 자신의 이름이 오르는 것이요, 첫날밤 신방을 꾸며 촛불을 밝히는 순간의 기쁨이며, 타향에서 고향 친구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며,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릴 때 느끼는 환희가 바로 네 가지 기쁨이라는 것이다. 박 선비는 뛸 듯이 기뻤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기쁨에 차서 거문고를 타며 사희를 소리 높여 노래했다. "金榜掛名時"요, "洞房華燭夜"며, "他鄕逢故人"이요, "大旱逢甘雨"라 밤은 깊어 자정이 지났지만 몇 번을 노래하고 또 노래해도 싫지가 않았다.

그때, 과거에 응시차 한양에 올라와 있던 또 다른 한 선비가 그 집 앞을 지나가다 이 소리를 듣게 되었다. 김씨 성을 가진 이 선비 역시 그 노래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을 되뇌었다.

드디어 과거 날이 밝았다. 시제는 사희(四喜)!

박 선비는 단숨에 답안을 써 내려갔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장원에 오른 이름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니 박 선비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전날 밤 어느 집 앞을 지나다 잠시 귀 기울였던 또 한 사람의 김 선비는 시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면서 다시 시제를 확인했다. 분명 "사희" 바로 그것이었다. 김 선비는 어젯밤 들었던 사희의 내용을 나름대로 다듬어 칠언절구로 답안을 적어냈다.

즉 "金榜掛名時"를 "少年金榜掛名時"로 "洞房華燭夜"를 "無月洞房華燭夜"로, "他鄕逢故人"을 "千里他鄕逢故人"으로, "大旱逢甘雨"는 "七年大旱逢甘雨"로 정리해 답을 썼던 것이다. 같은 장원급제라도 어린 나이에 급제하면 기쁨이 더 클 것이요, 이왕이면 달빛 없는 깜깜한 밤이 첫날밤의 신방엔 더욱 운치가 있는 법이며, 천리타향 먼 이국에서 만나는 고향 친구는 더더욱 반가울 것이며, 칠년대한 즉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나는 환희는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박 선비 대신 장원급제한 김 선비는 금의환향했다. 하지만 낙방의 충격으로 목숨을 잃은 박 선비의 환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내 글을 훔쳐 장원급제한 네놈의 목숨은 내가 가져가야겠다. 내 원혼이 언제까지라도 너를 괴롭히겠다.' 한순간도 환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김 선비도 정신착란에 시달리다가 얼마 안 가서 목숨을 잃게 되었다.

과도한 욕심으로 부정, 편법을 저지른 박 선비나, 자신의 실력이 아닌 남의 글로 장원한 김 선비 모두가 정도(正道)를 벗어난 과욕으로 끝내 화를 자초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하고, 공명정대해야 한다. 특히 공직자는 더욱 그렇다. 열심히 노력하여 정당하게 얻은 결과만이 진정한 자신의 자산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노력에 의한 참된 성취, 정도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내면의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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