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아르떼 예술 강사(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선발과정에서 운 좋게 최후 2인으로 남게 되었다. 평소 연극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부푼 마음으로 대구 소재의 어느 고등학교에 수업을 나가게 되었다. 나는 '어떤 선생님일까?' 수업 준비를 하며 과거 학창시설 좋아했던 선생님들을 모두 섞어놓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나만의 롤모델 선생님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학생들에게 화내지 않기,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기, 명령하지 않고 설득하기….
몇 가지 다짐을 하며 사전 답사를 위해 학교로 찾아갔을 때,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담당선생님을 보자마자 어쩌면 상처받은 청소년들을 연극으로 위로하고 싶었던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담당선생님은 굉장히 협조적이었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중앙계단만 이용하세요." "바로 옆 반에 이어서 강의가 있더라도 쉬는 시간에는 교무실로 내려오세요."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첫 수업을 앞두고 있는 외부강사에게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충고였다.
어느 날, 나는 수업 시간에 늦어서 무심코 교문에서 가까운 계단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담당선생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그 계단은 외부에 노출된 계단이었는데 그곳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계단에 줄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르기 시작한 계단을 다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태연한척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한 학생이 나를 가로막았다. "선생이에요?" "아마 그럴걸?" "아, 선생이구나." 그제서야 길을 비켜주었다. 이 외에도 날 당황하게 만드는 경험은 계속되었다. 쉬는 시간에 내가 앞에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학생들, 수업 중에 울리는 경찰차의 사이렌소리…. 학교선생님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상인 듯 개의치 않았다. 속상한 마음에 담당선생님께 울분을 토했다. "어떻게 선생이 학생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선생님도 처음엔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개도하려면 선생님들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회의감이 몰려왔다. 소득수준으로 계층을 구분하는 국가,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가정, 맞벌이를 해야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교권은 누가 무너트린 것인가?
먼저 선(先), 날 생(生). 선생님의 한자 풀이는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먼저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뜻일 것이다. 부모를 포함, 누구나 누구에게는 선생이다.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을 욕할 수 없다. 나는 그 학생보다 선생이므로 그 학생이 내뱉은 담배연기에 책임이 있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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