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私學)이 사악(邪惡)하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사립학교를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예외가 없다. 잊을 만하면 사학 비리 뉴스가 터진다.
건국 이후 오랫동안 한국의 교육 인프라는 척박했다. 민간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역대 정부가 사재를 털었다는 사학 설립자들 앞에선 약해졌던 이유다. 사학들은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폭 넓게 인정받았다. 그게 독이 됐다. 사립학교를 제대로 감사하면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다.
박용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전체 사학 비리 규모를 공개한 바 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사립유치원부터 사립고교까지 발생한 비위 건수는 2만4천300건, 금액은 1천402억원에 달했다. 사립대학의 비위 금액은 4천771억원이었다.
'숨 막힐 것 같은 규모', '나라가 망할까 봐 겁날 정도'. 이 통계를 밝히며 박 의원이 덧붙인 말이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간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가 이 상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수준이다. 특히 아이를 학교에 맡긴 부모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대구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대구시교육청이 사립학교법인 두 곳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비리로 물러난 전 이사장은 여전히 학교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사회 이사들도 한통속. 학교 교육에 쓸 돈으로 이사장실을 꾸미는 등 공금 횡령도 예사였다. 교내 비리 제보자를 협박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사학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유치원 3법'도 그런 조치 중 하나.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이다. 국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이 법안이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유치원 돈을 제멋대로 펑펑 써댄 사립 원장들이 공분을 불러일으킬 때만 해도 곧 시행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았다. '패스트트랙' 열차에 가까스로 올라탔지만 이번에도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자유한국당의 반대 논리는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주장과 흡사하다. 한유총은 국가 회계 시스템(에듀파인) 도입에 반발했다. 물건을 파는 점포도 아닌데 임대료 성격인 시설 사용료를 달라고 요구한다. 모두 사유재산이라는 게 이유다.
자유한국당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사학을 운영하는 집안 출신이고, 황교안 대표는 한유총 고문 변호사였던 게 자꾸 눈에 밟힌다. 사학 운영자와 관련된 이는 그들 외에 더 있다.
사학이 사유재산이긴 하다. 그래도 운영의 공공성, 투명성은 담보돼야 한다. 세제상 각종 혜택이 주어지고 교직원 인건비 등 재정 지원을 받는 만큼 책임이 뒤따르는 게 당연하다. 대구만 해도 사립유치원 1곳당 연평균 지원액은 5억1천여만원이나 된다. 사립고는 더 많다. 이번 감사에서 적발된 사립고 2곳의 올해 지원액은 각각 82억5천여만원, 56억3천여만원에 이른다.
한 한유총 관계자가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유치원 폐원 시 학부모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는 건 치킨집 문을 닫는데 종업원 3분의 2 동의를 받으란 것과 같은 꼴"이라고. 당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반문했다. "유치원이 치킨집입니까?"
사립유치원은 단순한 사유재산이 아니다. 비영리기관인 학교다. 아이들의 학습권이 보장돼야 한다. 또 사학의 주머닛돈은 쌈짓돈이 아니다. 그 돈 대부분은 국민의 혈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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