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잘사는 나라'다. 선진국그룹이라 할 OECD에 가입한 것이 23년째다. 아시아 최초로 G20 회의 유치에 성공했을 정도로 국제적인 대접도 나쁘지 않다. 문재인 정부 자랑처럼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에 들었다. 세계 여섯 번째 수출 대국이기도 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부자나라라 치켜세운다. 이 모든 것이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가 경제적 파이를 지속적으로 키워온 결과다. 국민은 이제 '잘사는 나라'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원래 잘사는 나라는 아니었다. 까마득히 잊었거나, 경험하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지지리도 못살았다. 빈곤과 질병, 무지를 떠올리던 후진국이었다. 1961년 한국의 1인당 GDP는 89달러로 전 세계 125개국 중 101위, 북한은 320달러로 50위였으니 그럴 만했다.
우리는 그런 절망을 딛고 기적을 일궜다. 기적의 토대를 마련한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는 분명한 철학의 소유자였다. "후손에게 가난한 조국을 물려주지 않겠다." 이 말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실천 방법을 찾았다.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내건 구호는 간단명료했다. '공업 입국', '전 산업의 수출화'. 전남 여수공단을 시작으로 포항제철, 구미공단을 세웠다. 고속도로를 건설해 동맥을 뚫고, 댐을 만들어 용수를 확보했다. 원자력 발전소를 세워 값싸고 안전한 에너지를 공급했다.
한국 경제는 연평균 9%씩 성장했다. 1961년 4천만달러던 수출은 1979년 151억달러가 됐다. 연평균 40%씩 늘었다. 수출이 느니 효과는 전 산업에 파급됐다. 고용도 급격히 좋아졌다. 소득은 높아졌고 삶은 나아졌다. 구체적 수치로 드러난 결과 앞에서 공과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우리는 그 과실을 따먹으며 오늘을 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 "이 땅에서 가난을 추방하는데 구호가 화려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국정 목표를 미사여구로 제시한 적이 없다. 올해 목표는 '수출 10억달러 달성', '성장률 목표는 10%' 하는 식으로 늘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수치로 표시된 국정 목표는 국민이 이해하기 쉬웠다.
승승장구하던 한국 경제가 문 정부 출범 2년여 만에 곤두박질치고 있다. 어떤 역경을 딛고서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창조해왔던 한국 경제에 이상 징후가 뚜렷하다. 이러다가 "후손들에게 빚만 물려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시 가난의 역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저어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든든한 버팀목이던 수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12개월째 내리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17년 3.2%던 성장률은 올해 2%까지 내려앉았다. 기업들은 엑소더스 행렬에 올라타고 있다. 직장에서 밀려난 40대는 대통령이 걱정할 정도다. 한 해 문 닫는 자영업자가 100만 명을 넘게 생겼다. 공단 가동률도 뚝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산율은 1명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애써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단다. '나라다운 나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 같은 미사여구가 남발된다. 올해 신년사 제목도 '오늘이 행복한 나라'였다. 수치로 뒷받침되지 않는 미사여구에 국민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세계 최고의 리더십 전문가로 꼽히는 존 맥스웰은 말했다. "목표를 설정할 때보다 목표를 실현할 때 감동을 받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꼭 새겨야 할 말이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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