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

동진 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동진 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동진 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초겨울 산사는 나목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 해 내내 풍성했던 푸른 풍경들이 허공 속으로 사라져 이제는 흑백사진으로만 보인다. 허공 속에 남은 나무들의 선은 담백하다. 버릴 것을 다 버려서인지 가지들은 자신의 존재를 맑게 드러낸다. 새들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텅 빈 곳 사이로 바람만 지나간다. 개울의 물소리와 달빛에 비친 낙화담은 더욱 차갑게 푸르다.

빈 들녘들은 자신의 피부를 드러내고 봄의 생명을 싹 틔우기 위해 태양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한 해를 살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고 용서할 줄 아는 삶을 살았는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지 않았는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지 않았는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본다.

내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이기적으로 성내며 나누지 못했다. 가슴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고 슬프게 했던 소중한 인연들께 참회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도한다. 안락한 삶이 되게 칭찬하며 자비와 사랑을 나누는 이웃이 되길 염원한다.

영겁의 세월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세월의 빠름은 달리는 말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다. 궁수가 활을 쏘아 놓고 즉시 달려가 붙잡는다면 이 사람은 굉장히 빠른 사람이다. 해와 달이 하늘을 달리는 속도는 그보다 더 빠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 인간의 수명이다. 해와 달이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므로 누구든지 게으르지 말고 불방일(不放逸)로 이 세상에 온 가치를 완수해야 한다.

한 해를 돌아보며

若人壽百歲(약인수백세) 不知大道義(부지대도의) 不如生一日(불여생일일) 學推佛法要(학추불법요)

"어떤 사람이 백 년을 살더라도 진리를 모르고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진리를 알고 사는 삶이 훨씬 낫다"고 법구경에서 말한다.

공자(孔子)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子曰 朝聞道 夕死可矣)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눈멀었고 몇몇 사람만이 진리를 보네, 몇몇 새만이 그물을 벗어나듯 몇몇 사람만이 하늘 세계로 가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진리를 알 때 비로소 고통의 그물을 벗어날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대리석 덩어리를 그저 재료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돌 안에 갇힌 위대한 형태를 바라봤다.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 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 그는 형상을 만들거나 다듬는 게 아니라 재료에서 모습을 찾아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 냈다. 신라인들의 예술문화도 그러했다. 경주 남산의 수많은 석불, 석탑들이 그와 같이 온화하다. 지금의 정치, 경제, 노동, 사회 분야에서도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 내고 정치가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좀 더 안락하고 행복한 제도를 제공해야 한다. 한 해를 반성하며 되돌아본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시간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또 새해가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다짐과 목표를 세운다. 나 또한 건강한 한 해를 보낼 수 있게 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한 해의 감사와 새해의 희망을 발원한다. 우리네 삶도 불필요한 부분들을 덜어 내며 사는 것이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모습이다. 가족과 주변 이웃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새해는 더 큰 기쁨의 한 해가 되길 바라며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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