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율100%의 고양이전염성복막염
불치병. 사람이나 동물이나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들이 있다. 고양이에게 대표적인 불치병은 고양이전염성복막염(FIP)이다.
알리(코숏, 8mons)가 내원하였다. 빈혈과 고글로부린혈증이 확연해지며 빠르게 쇠약해지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FCoV) 항체가 확인되고 여러 검사들을 통해 알리는 고양이전염성복막염(FIP)을 진단받았다.
고양이전염성복막염은 고양이를 돌보는 집사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단어이다.
자연계에는 고양이코로나바이러스(FCoV)가 만연해있다. 집고양이의25%, 길고양이의70% 이상이 항체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곧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고양이의10% 이상은 만성적으로 바이러스를 체외로 배출하며 직간접적인 접촉에 의하여 쉽게 전파되어진다. 길고양이와 보호소 고양이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더 많이 감염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고양이코로나바이러스 자체는 병원성이 미약하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고양이 체내에서 고양이전염성복막염바이러스(FIpV)로 변이되면 상황은 급격히 심각해진다. 고양이전염성복막염바이러스가 사망율100%의 고양이전염성복막염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고양이코로나바이러스가 전염성복막염바이러스로 변이될 확률은3% 정도다. 입양하는 길고양이 100마리 중에2-3마리 정도는 고양이전염성복막염이 발병한다고 예상할수 있다. 이러한 발병율은 열악한 환경일수록 확률이 높아진다.
◆전염성복막염바이러스, 대식세포를 통해 장기로 급속히 확산
고양이전염성복막염바이러스는 대식세포(Macrophage) 내에서 증식한다. 대식세포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탐식하는 우리 몸의 중요한 면역담당세포이다. 전염성복막염바이러스가 대식세포 내에서 증식하다 보니 체내의 정상적인 면역항체에 영향을 덜 받으며 대식세포를 통해 여러 장기로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 효과적인 예방백신이 개발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양이전염성복막염은 체액성 면역계가 급속히 활성화되면 복수를 동반하는 습식형(Wet type) 복막염이 발생하고, 일부 면역체계가 병의 진행을 억제시키면 육아종이 형성되는 건식형(Dry type) 복막염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외형상 드러나는 증상으로 감별이 어렵고, 질병이 확연해지기 전에는 검사를 받더라도 확진이 어렵다.
◆고양이전염성복막염 치료약물 개발
최근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고양이전염성복막염을 치료하는 약물이 개발되어 고양이 보호자분들의 문의가 많아지고 있어 알리의 치료 케이스를 소개한다.
알리는 심한 빈혈증상과 쇠약상태에서 신약(GC37)을 투여받는 입원 치료가 시작되었다. 약물 투여 2일차 부터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하더니 입원 7일 차에는 확연히 건강해지며 빈혈수치도 나아졌다. 12주 간 매일 주사를 맞아야 했다. 날로 건강해지는 알리와 보호자의 밝은 표정에서 잠시 보람을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불치병을 치료하는 이 약물도 바이러스를 근원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한다. 이 약물은 전염성복막염바이러스의 체내 복제를 막는 항바이러스제제다. 과거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에이즈환자들이 약물을 복용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과 유사하다. 회복되었다 하더라도 재발의 가능성은 남아있고 재발되면 치료가 다시 진행되어야 한다. 아직도 임상시험 연구들이 진행중인 시험용 의약품이다.
12주 간 매일 투여되는 신약의 약가는 상상이상이다. 고양이전염성복막염 치료를 위한 기본 12주간의 치료 프로토콜에 소요되는 약가만 수백만원을 상회한다. 여기애 증상의 정도에 따라 검사, 입원, 치료들이 병행되면 진료비 부담이 상상 이상으로 폭증한다.
꽁이(코숏, 1Y)도 고양이전염성복막염으로 진단받았다. 꽁이 보호자는 치료비가 부담스러워 차선의 치료법를 선택하였다. 꽁이에게는 염증을 억제한느 약물과 항생제와 영양수액 대증요법이 병행되었다. 다행히 일시적인 증상의 호전은 있었지만 몇 주 간격으로 악화와 호전이 반복되었다. 치료가 진행될수록 약물의 효능이 떨어지고 치료가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음을 설명드려야했다.
테비(코숏, 2Y)도 고양이 전염성복막염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테비 보호자는 검사비와 치료과정을 들으시고는 냉정하게 안락사를 요청하셨다. 가슴 아픈 순간이다. 수의사는 보호자의 입장을 존중하지만 때로는 동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보호자를 설득시켜야 할 때가 있다.
◆최소한의 치료는 동물의 생명권
최선과 차선, 최소한의 치료는 보호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알리에게는 최선, 꽁이에게는 차선, 테리에게는 보호자를 설득하고서야 최소한의 약물 처방이 이루어졌다. 최선의 치료는 보호자의 선택이지만 최소한의 치료는 동물의 생명권을 고려하여 보호자의 의무이어야 한다.
반려인의 바램은 질병이 치료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의료비 부담은 치료를 선택하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보호자와 수의사 모두의 고민인 셈이다.
자동차 소유주는 불의의 사고를 대비하여 누구나 의무적으로 자동차보험에 가입한다.
반려동물 소유주도 불의의 사고와 질병을 대비하여 의무적으로 동물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제도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반려인은 동물의 한평생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한다. 동물의 질병을 대비하여야 한다. 나의 반려견이 타인에게 가할 수 있는 피해도 대비하여야 한다. 동물의료보험은 가입자가 많을 수록 보험료 부담은 줄어들고 보장 범위는 넓어진다. 동물의료보험 가입 의무화가 필요한 이유들이다.
우리나라는 동물진료비에 부가가치세를 부가하고 있다. 동물의료비가 가중되는 더 큰 이유이다. 사람의료는 숭고하고 동물의료는 사치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치료의 대상이 동물이기 때문에 반려인에게 세금을 부가시키는 차별이 개선되기를 소망한다.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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