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이아몬드 스텝이 저절로…이연정 기자의 '살사댄스' 체험

기본 스텝 20분 만에 다리 풀려 파트너들 도움으로 차츰 적응
한 곡 배우려면 최소 2달 걸려

이연정 기자가 대구 살사댄스 동호회
이연정 기자가 대구 살사댄스 동호회 '살사홀릭' 회원들과 함께 살사댄스를 연습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살사? 그거 너무 야한 춤 아냐?" "멋있다! 나도 배워보고싶은데 엄두가 안나네."

살사 댄스를 체험하겠다고 나섰더니 반응이 엇갈렸다. 스킨십이 심한 춤 아니냐며 걱정을 얹어주거나, 도전하는 게 대단하다며 걱정을 덜어주거나. 물론 그 사이에는 '과연 니가?'라며 비웃음을 날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칼을 빼든 이상 살사의 새콤매콤한 맛을 봐야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용기마저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살사댄스는 어떤 다른 장르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교감(交感)이 큰 춤이었다. 외워서 따라 추는 춤과 달리 파트너와 즉흥적으로 호흡을 맞추는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서로를 배려하며, 건전하게, 하지만 열정적으로.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지난 13일 대구 동성로의 한 클럽을 찾았다. 이곳은 회원 수만 1만명이 넘는 대구지역 최대 살사댄스 동호회 '살사홀릭'의 둥지. 이날 오후 8시부터 9시 반까지 동호회 회원 20여 명과 함께 왕초보 입문 다음 과정인 레벨2 수업을 함께 들어봤다.

◆한 곡 마스터에 최소 8주 강습

수업 시작 전, 동호회 대표인 '스팅'(양한기) 씨가 살사댄스 강사인 '여리'(이강렬) 씨와 '미수리'(강보승) 씨를 소개했다. 동호회에서는 선생님, 저기요 대신 닉네임으로 서로를 편하게 부른다. 왕초보와 몸치 중 어떤걸 닉네임으로 할까 고민하다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곧 깨달았다.

여리 씨는 10년차, 미수리 씨는 7년차 프로 댄서. 살사댄스 프로는 데뷔 기준은 없지만, 베이직 스텝 하나만으로도 아마추어와 확연한 실력 차이를 보인다.

여리 씨가 "살사는 아프리카계 쿠바 리듬을 베이스로 재즈 등 미국식 스타일이 가미된 장르다. 국내에서는 크게 스텝의 차이에 따라 'LA 스타일'로 불리는 온원(On 1)과 '뉴욕 스타일'로 불리는 온투(On 2)로 나눠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본적으로 남녀가 함께 추는 커플 댄스지만, 각자 화려한 동작을 선보이는 '샤인' 구간도 있다. 최소 8주 정도 배워야 한 곡을 출 수 있는 수준이 된다"고 했다.

발목까지 오는 겨울 부츠를 신고 있던 기자에게 스팅 씨가 샌들처럼 생긴 빨간 댄스화를 건넸다. 그러고보니 여성 수강생 모두 운동화를 신지 않았다. 스팅 씨는 "강화마루로 된 바닥에서 빠른 회전이 많은 살사댄스를 추려면 가벼운 댄스화는 필수"라며 "기능적인 부분 외에 옷에 맞는 색으로 맞추는 등 미적인 부분까지 완성하는 것이 댄스화"라고 귀띔했다.

대구 살사댄스 동호회
대구 살사댄스 동호회 '살사홀릭' 회원들이 살사댄스 파티를 즐기고 있다. 살사홀릭 제공

◆음악에 맞춰 스텝 '무아지경'

댄스화까지 신고,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여리 씨의 카운트에 맞춰 가볍게 기본 스텝을 따라했다.

앞뒤로 오가며 스텝을 밟는 것이 생각보다 쉬웠지만, 매혹적인 살사의 몸짓보다는 그냥 걷기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땅으로 늘어뜨려놓은 팔이 어색해 팔을 살짝 접어 들어올렸다. 살사 느낌은 커녕 그저 '조금 더 빠르게 걷는 사람'의 모습이 됐을 뿐이었다.

여리 씨가 '라이트 턴'을 외쳤다. 순간 당황했지만 오른발을 축으로 한 턴을 곧잘 따라할 수 있었다. 이어 '레프트 턴'까지 수월하게 습득했다. 하지만 발을 교차해 옆으로 내딛는 '수지큐'와 발을 앞으로 내딛어 찍는 '스위치' 스텝이 섞이기 시작하자 발이 바빠졌다.

여리 씨가 잠시 스텝을 멈췄다. "악기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경쾌한 카우벨 소리와, 살짝 엇박인 듯 하지만 북을 두드리는 콩가 소리가 들리시죠. 악기의 소리에 따라 스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이 카우벨 소리에 맞춘 스텝이었고, 콩가에 맞춘 스텝을 또 배워볼게요."

콩가 스텝이 익숙해지자, 여리 씨가 카우벨과 콩가 리듬, 라이트·레프트 턴, 스위치, 수지큐를 번갈아 외쳤다. 동화 빨간구두의 주인공 마냥 발이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고는 혼자 헛웃음이 나오는 지경이었다.

여리 씨가 '잠시 쉴게요'라고 했을 때는 고작 20분이 지나있었다. 다리가 풀려 주저 앉았다.

◆'스트레스 해소' 직장인 취미로 인기

여리 씨와 함께 열정적으로 스텝을 선보인 미수리 씨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미수리 씨는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큰 춤"이라며 "단시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배우면 배울수록 응용할 수 있는 동작도 수없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또한 "공연이나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닌, 평소에도 가볍고 재미있게 출 수 있는 춤이라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도 누구나 살사로 하나될 수 있다"고 했다.

곧 다시 수업이 시작됐다. 베이직 스텝을 토대로 파트너와 함께 맞춰보는 연습. 남녀 수강생들이 일렬로 마주보고 서서 손을 잡고, 박자에 맞춰 배운 스텝을 찬찬히 밟았다.

파트너를 바꿔가며 턴 연습을 했다. 남성 수강생들은 대부분 5~6개월간 수업을 들어 비교적 몸에서 태(?)가 났다. 손을 잡는 것부터 어색했지만 차츰 적응해갔다.

하지만 생각처럼 발이 움직이지 않고 자꾸 스텝이 엇갈렸다. 남성이 리드하는 춤답게, 파트너가 섬세한 손길로 턴의 타이밍을 알려줬다. 여리 씨가 "살사는 서로 배려하는 춤입니다. 누가 더 잘 춘다고 뽐내지 않아요. 서로의 호흡과 눈빛을 맞추는 춤"이라고 말했다.

문득 촉각에서부터 인간애가 시작된다고 한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의 말이 떠올랐다.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지 않으려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만이 가능한 이러한 방식의 정서적 교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1시간 반 가량 7cm 굽의 힐을 신고 바삐 움직였더니 종아리 근육이 당겨왔다. 여리 씨가 다리 스트레칭하는 방법까지 친절히 설명했다.

스팅 씨는 "즐겁게 체력을 키울 수 있는 취미로 딱"이라며 "격정적으로 춤을 추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될 뿐 아니라 자신감도 생겨, 직장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살사홀릭 카페(cafe.naver.com/busanholics)를 통해 강습과 정모(정기 모임) 신청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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