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장밋빛 미래라는 완벽한 환상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안정효 역, 소담출판사, 2019

제주 별빛누리공원 . 정종윤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제주 별빛누리공원 . 정종윤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이 때쯤이면 신문이나 TV에서는 한해의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대한 언급도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기술로 이루어진 약속된 미래. 말만 들어도 근사하지 않은가. 그만큼 '기술'과 '미래'라는 단어 조합에는 뭔지 모를 기대와 소망을 품는 힘이 있다. 어쩌면 예지 능력을 가지지 못한 인간의 한계가 잉태한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멋진 기술과 희망찬 미래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 또한 존재했다.

"나는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과학문명의 정점을 경험한 야만인의 외침이다. 그의 결론은 의문을 자아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소설 속에서 인류는 문명의 혜택을 만끽한다.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 체력과 외모를 유지할 수 있으며, 심리적 고통에 시달릴 경우 부작용 없는 약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결혼제도에 얽매일 필요도 없으며 자유로운 성관계는 널리 권장된다. 물론 성병이나 AIDS와 같은 질병은 말끔히 퇴치되어 그와 관련된 어떤 염려도 할 필요조차 없다. 사회제도나 정부기구의 운영이 불합리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땅은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모든 공장에는 알맞은 인원이 배치되어 있다. 실업으로 고통 받는 일도 없으며 법은 공정하게 집행된다. 이렇게나 완벽한 세상, 어찌 보면 환상적인 유토피아가 도래한 것인데 야만인은 왜 모든 것을 거부한 것일까?

"쉽고 피곤하지 않은 일을 7시간 반 정도 하고 난 다음에 알맞게 처방된 약과 놀이, 자유로 운 성관계, 재미있는 영화를 누립니다.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하나요?"
야만인의 거부에 대한 정부기구 통제관의 반문은 적나라한 만큼 날카롭다. 그의 대답은 우리의 기대와 욕망, 과학기술 간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지점을 드러낸다. 끊임없는 기술의 발전은 과연 무엇을 위함인가. 그 미래의 종착지에서 인류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욕망의 충족과 쾌락이 전부는 아니라고 나는 믿고 싶다. 욕망이 일상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곳으로 향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작가는 『멋진 신세계』 전편을 통해 치밀하게 드러낸다.

소설 속 야만인도 과학문명을 떨쳐버리고자 도시를 떠났지만 어떤 곳을 향해야 할지 찾아내지는 못한다. 결국 쾌락 대신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삶조차 한낱 볼거리로 취급하는 문명인들의 행태에 절망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공중에서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시신의 모습을 건조하게 묘사함으로써 헉슬리는 야만인의 절망과 인류의 방향감각 상실을 동시에 표현한다.

'멋진 신세계'를 향하는 목적이 오로지 욕망의 충족일 뿐이라면, 인류는 야만인이 말한 대로 한심한 존재가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이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 우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도 못하고 나아가야할 방향을 지시하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삶의 올바른 방향과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정종윤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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