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장애를 만드는 사회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훈이를 도와줄 형과 누나들이야. 인사해야지" 재활의학과 교수님의 소개로 훈이를 처음 만난 건 물리치료실이었다. 부끄러운지 훈이의 얼굴이 발개졌다. 훈이는 뇌성마비로 팔다리에 운동 장애가 있었고, 띄엄띄엄 말을 하려면 노력이 필요했다.

의대생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씨 연습을 돕고 말벗이 되어 함께 놀아주는 게 전부였다. 교수님은 '놀이 치료'도 효과가 크다며 봉사활동 나온 우리를 격려했다. 며칠이 지나자 훈이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병실에 가면 반가워하는 눈빛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를 기다린다고 간호사가 귀띔해 주었다. 우리가 응원하면 보행 연습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글씨 연습을 하는데 양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물론 훈이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 정원에 나가 노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훈이 어머니는 아들을 일반 학교에 입학시키고 6년간 교실까지 업어서 등하교시켰다. 병원에서도 아들이 의지를 잃지 않도록 늘 칭찬했다. "명심해라. 너는 남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지적장애 아들이 기죽지 않도록 응원하던 어머니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20여 년 만에 훈이의 얼굴이 떠오른 것은 한 정치인의 장애인 비하 발언 때문이다. '선천적 장애인은 후천적 장애인에 비해서 의지가 약하고, 후천적 장애인은 정상적인 삶에 대한 꿈이 있다.' 훈이가 흘리던 구슬땀이 기억나 화가 났다. 그리고 '장애인의 삶'이 어째서 '정상적인 삶'이 아니란 말인가?

'장애인'의 반대말은 '비장애인'이지만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장애'란 말에 '열등함'이라는 부정적 낙인이 찍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인은 손상된 몸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으로 '무엇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일 뿐이다. 설 명절 귀향길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장착된 고속버스가 우리나라에 단 10대 뿐이라는 뉴스를 듣고 부끄럽고 미안했다. 장애인이 버스로 고향에 가지 못한 것은 '그들 몸의 손상'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의 기본권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손상' 때문이 아닐까?

장애인 비하는 정치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병신, 불구자, 저능아, 정박아,벙어리, 미치광이' 같은 용어 속에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스며있다. 나쁜 의도는 없었더라도 장애인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놓치는 순간 누구나 이런 말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지적 장애가 있는 딸을 키웠던 작가 펄 벅은 에세이 '자라지 않는 아이'를 통해 많은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선물했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며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이 바로 내 아이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

그해 겨울, 꽃다발을 들고 훈이 졸업식에 갔다. 퇴원할 때 한 약속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안고 해맑게 웃던 훈이가 보고 싶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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