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1 '노진아-공진화'

노진아 작
노진아 작 '진화하는 신, 가이아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우리를 닮은 존재들을 만들어내며, 거기에 생명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 인공생명체는 물질적 특성만이 다를 뿐이지 생명체가 가지는 요건을 상당히 충족시켜주고 있는 경우가 많다.(중략) 시간이 갈수록 기계를 닮은 인간과 인간을 닮아가는 기계들은 모두 그 '생명'이라는 경계 안과 밖에서 서로의 위치를 넘나들며 공진화하고 있다."

세상에. 하얀 전시 공간 한가운데 누운 채로 공중에 떠있는 반신의 여성 누드조각이 한편 섬뜩했다. 인간을 닮은 기계 로봇의 상반신 신체와 드러난 가슴, 허리 아래로는 마치 혈관이 뻗어가는 것처럼 붉은 색 나뭇가지들이 길게 자라나 있는 기이한 형상이었다. 설치작품 명 '진화하는 신, 가이아'이다. 설상가상 가이아는 큰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관객을 쳐다보고, 귀에 대고 말을 걸면 그에 상응하는 대답도 한다.

"넌 사람이야?" "난 아직 기계지만 곧 생명을 가지게 될 거야, 당신이 도와줘서 생명체가 되는 법을 알려준다면 말이지."

작가의 말처럼 인간을 닮은 기계가 인간과 대화를 통해 공진화하는 (미래의 어느)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다.

설치작품 가이아는 2002년부터 전통 조각과 뉴미디어를 접목,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대화형 인간 로봇을 제작해온 작가 노진아의 2017년 작 인터랙티브(Interactive'상호작용적) 설치조각이다.

봉산문화회관 2층 4전시실인 기억공작소는 올해 첫 전시로 미디어'설치 장르의 작가 '노진아-공진화(Coevolution)'전을 펼치고 있다.

작가에 의하면 가이아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관객이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을 외부 웹서버로 보내고, 질문-대답 사전을 검색해 찾은 응답 내용을 다시 음성으로 합성해 가이아의 입을 통해 답하는 시스템이다.

생명의 정의를 시스템의 개념으로 본 작가는 '기계적 생명'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가이아 이론'을 차용한 것이다.

노진아는 가이아를 통해 미래의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기계의 습득능력, 자기 조절능력, 자기 복제능력이 머잖은 미래에 실현가능하고, 이러한 놀라운 속도의 진화는 어쩌면 우리 모든 진짜 생명체의 어머니로써 가이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작가는 하고 있는 셈이다.

또 가이아 맞은 편 공간엔 작가의 또 다른 인터랙티브 조각이 있다.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인 반기계 인간. 작품 명 '나의 양철 남편(My Hus Tinman)'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눈이 미세하고 움직이는 나무꾼 조각이다.

작가의 남편을 모델로 한 이 작품은 한 나무꾼이 사랑하던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방법을 찾다가 마녀의 마법에 걸려 의도치 않게 몸의 일부를 도끼로 잘라내게 되고 그때마다 잘려나간 몸을 양철로 대체했다. 반짝이는 은색 양철의 아름다움과 편리함에 이끌려 기뻐했던 그 나무꾼은 결국 어느 순간 마음도 잃고 사랑하는 이의 기억마저 잃어버린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현대사회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가 점차 기계화되면서 감성마저 무디어지는 삶의 무게에 대한 단상을 은유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직접 작품들과 대화도 하고, 정적이기보다 동적인 작품의 형상을 통해 대화형 인공지능 인터랙티브 아트에 대한 시도와 그 창작 사유에 대한 공감각적 감성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장점이다. 전시는 3월 29일(일)까지. 문의 053)66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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