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권심상수(權心常守)

임종대
임종대

오상원(吳尙源)(1930~1985) 선생의 우화는 문학적 알레고리를 통하여 표면너머의 이면을 교묘하게 꼬집고 있어 통쾌함을 유발한다.

동물왕국 호랑이 임금이 어느 날 화려하게 장식된 옥좌를 더듬다가 불현듯 자신의 권좌를 노리는 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급히 산속의 짐승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명령이 떨어지자 짐승들이 다투어 달려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부르심을 받자옵고 황급히 달려왔사옵니다. 무슨 긴한 분부라도 있으시옵니까?"
호랑이 임금은 위엄을 갖추고 쓱 둘러본 뒤에 "빠진 자가 없으렷다?"하고 물었다. 표범의 얼굴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여우가 말했다. "표범 어르신께 전갈을 했으나 출타 중이라 아직 대령치 못했사옵니다."

호랑이 임금은 심히 불쾌한 듯 숨을 죽인 뒤 입을 열었다. "짐이 그대들의 도움을 받아 권좌에 오른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짐이 무한한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대들 덕택이라는 걸 잠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많이 흐르고 보니 기력이 쇠하여지고, 사리판단 능력 또한 흐려져 예전과 같지 못하다. 그래서 강력하고 총명한 후계자를 골라 이 권좌를 물려주려고 한다.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

그러자 침묵을 깨고 여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의 그 깊으신 뜻을 모르는 바 아니오나 부디 그 결심을 거두심이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예로부터 폐하는 제 스스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어찌 나라와 백성을 저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하오니 그 뜻을 거두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호랑이는 만족스런 웃음을 머금으며 늙은 산양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늘 그대의 깊은 경륜을 높이 사고 있었다. 경의 생각은 어떤가?" "제 뜻도 같은 줄로 아뢰옵니다."

호랑이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늙은 산양은 호랑이가 여우의 말을 듣는 순간, 입가에 흘린 웃음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 이번에는 늦게 당도한 표범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짐은 늘 마음속 깊이 그대를 후계자로 점찍어 왔었다. 자,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황송하옵니다." 표범은 일단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당당하게 말했다. "예로부터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는 자기를 알고 모르는 데 있다 하였습니다. 영광이 다하기 전에 자리를 물러나면 길게 영광을 누릴 수 있으나, 영광이 다한 연후에 물러나면 남는 것은 회오(悔悟)와 모멸뿐이라 하였습니다."

호랑이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모두가 나의 뜻을 거두도록 만류하는데 그대만 그렇지 않으니 남은 길은 오직 하나뿐!" 말이 떨어지자마자 호랑이는 표범을 한 입에 물어 쓰러뜨리고 나서 한탄하듯 말했다.

"짐의 뜻은 그렇지 않았으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지금 짐은 이보다 더 슬플 수가 없구나. 바라건대 앞으로는 짐이 또다시 이런 슬픈 일을 겪지 않도록 하라."

권심상수(權心常守)는 글자그대로 권력자의 마음은 항상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데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권력이 오만과 독선에 빠질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 광화문시대를 열겠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 하겠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 그리고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취임사의 그 대통령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는 국민이 많고 국민의 속은 타 들어간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