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매일신문의 시각, 디지털에서도 쭉 이어집니다. 매일신문은 2월부터 '디지털 필진'을 통해 매일신문 홈페이지와 네이버 모바일 등을 통해서 다양한 주제의 칼럼을 독자 여러분들에게 전달합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를 넘나들며 시니어 세대의 차분한 시선과 젊은 필진의 톡톡 튀는 시각을 함께 제시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매일신문 지면이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2020 세상 읽기]를 통해 느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언론인의 가장 큰 매력은 세상을 자신의 주견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주목을 받는 공인이 아니어서 행동거지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 나이의 장벽도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다. 필자가 70을 앞두고 칼럼 집필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언론인의 무한정년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다. 그러나 언론 현업을 떠난 지 이미 10여년, 이제는 과거의 기억과 경험만으로 글을 채울 수 있을 뿐이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을까마는 늙은 쥐가 독 뚫는다는 속담도 있으니 노병의 한마디 참견 정도는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언론 뉴스의 대부분은 지난 7일 또는 10일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보도와 논평이 주를 이룬다. 그 내용은 무슨 일이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두 가지다. 요즘의 우한(武漢) 폐렴과 문재인 정권의 괴변들이 그런 주제라 할 수 있다. 지난 몇 개월간 대한민국은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변란기사들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사안이 너무 많고 복잡해 늙은 쥐도 주머니 뒤집듯 진상을 보여주기 어려운 형편에 이르렀다.
변란기사의 출발점은 문 정권 시작부터였지만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증세가 험악해졌다. 급기야 작년 12월 새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를 신호탄으로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사태가 본격화됐다. 한 달에 한두 건도 감당하기 힘든 변란기사들이 밥 먹듯 잇따르고 있으니 이는 정권 파국의 조짐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자유민주국가의 좌파나 우파, 보수나 진보의 문제라면 지금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어렵다. 좌우나 보진은 이념적 지향은 달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변란기사의 근원은 문 정권이 유사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데 있다. 대통령의 아바타인 전 법무장관 조 아무개 씨가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주의를 시인하고, 이 정권의 역사교과서가 자유민주주의 대신 (인민)민주주의를 내세운 것으로 저간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인민민주주의는 사회주의로 가는 전 단계의 정치체제다. 추 아무개 법무장관이 지난 시절 당 대표를 할 때 토지 공개념을 언급한 것은 그 전초전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떤 범여 위성정당 대표는 국민들은 선거법을 세세히 알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인민투표가 요식행위에 그치니 가재, 붕어, 개구리는 투표만 할 뿐 선거의 과정이나 결과를 알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일까. 국민 협박?에 능숙한 집권당 대표도 20년 집권을 공언했으니 그것이 사회주의 체제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면 오만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
변란기사 다발의 상황적 이유는 민주제도의 기본인 삼권 분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입법부(집권당 및 범여 위성정당)는 행정부의 배후세력이라는 점에서 권력분립을 잠시 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그들이 지난 70년간 쌓아온 의회주의 전통을 무너트리고 의회를 무법천지로 만든 사실에 대해서는 언젠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문제는 헌정질서와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면서 민주제도 전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김 아무개 대법원장은 사조직 세력을 법원 요소요소에 포진시켜 이심전심 뇌물죄로 기업과 전 정권을 옭아매고, 부정선거를 획책한 중죄인을 풀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입법부, 사법부가 이 모양이니 행정부가 거리낌 없이 무법천지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변란기사를 막을 또 하나의 민주제도가 국민여론을 수렴해서 공표하는 언론이다.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의 감시기능이 살아있다면 유사 사회주의를 제어하는 것은 물론 정권의 정당성까지 박탈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 정권은 집권과 동시에 주력언론인 공영, 민영 지상파 방송을 유사 관제방송으로 만들어놓았다. 관제방송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나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 나타나는 언론현상이다. 그 결과는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다. 2019년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뉴스 시청률은 2011년의 반 토막(KBS 10.1%, SBS 5.6%, MBC 4.0%)으로 추락했다. 반 토막 시청률은 지상파 방송 신뢰도의 폭락을 의미한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방송언론 책임자들은 언젠가 국민을 배신한 대가를 치러야할 것이다.

문 정권은 입법부, 사법부, 관제언론(여기에는 여론조사회사도 포함된다)을 배후 세력으로 소수의 정론매체, 1인 매체들을 여론시장의 주변으로 내몰고 있다. 그 수단으로 동원된 것이 소위 가짜뉴스와 인권이다. 뉴스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진짜와 가짜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물건이다. 진실을 지향하지만 진실을 보도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언론에 뉴스를 제공하는 측이 사악한 의도로 접근하면 적어도 일정기간은 거짓으로 진실을 덮을 수 있다. 그런 나쁜 의도를 실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부류는 주로 권력을 가진 자 또는 집단이다. 이들이 가짜뉴스의 주 생산자다.
미국 시민단체가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완전 가짜, 가짜, 대체로 가짜, 가짜와 사실 반반, 대체로 사실, 사실로 구분한 것은 필자의 언론 상식과 부합한다. 이런 잣대로 분석한 트럼프의 발언은 85%가 가짜였다. 문 정권의 발언을 분석해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문 정권의 가짜뉴스가 트럼프의 그것보다 훨씬 고약하고 악의적이라는데 있다. 정부여당이 소위 가짜 뉴스를 공격하는 것은 큰 도둑이 선량한 시민을 때려잡는 적반하장으로 들릴 뿐이다.
유사 사회주의 세력은 가짜뉴스와 함께 인권을 언론 재갈 물리기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자유국가의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모든 공인들은 늘 국민들의 감시 아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국가의 안위와 국민들의 생사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의 알권리가 필요한 것이고, 그 역할을 언론이 대신하는 것이다.
공인의 인권이 갖는 사적 이익은 국민의 알 권리가 갖는 공적 이익에 비해 티끌에 불과하다. 공인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막중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윤리성, 정당성, 직무능력을 지속적으로 확인시켜야할 책무가 있다. 그 때문에 공인에게는 가정이라는 공간 내부의 사생활이나 약간의 명예훼손 방어권이 주어질 뿐이다. 가족 등 그 주변인물 역시 준(準)공인으로서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그런 부담을 거부하는 이들은 공인이 돼서는 안 된다.
조 아무개 전 법무장관의 다중비리 사건과 이어진 각종 국기문란 사건의 처리에서 문 정권은 이런 상식을 완전히 벗어났다. 소위 인권을 명분으로 국민들의 정당한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침탈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헌법, 법치주의를 조롱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면서 무법천지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좌파정권이 들어선 2000년대 이후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이 사태는 역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전기를 만들었다. 엄청난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대한민국의 자각은 비뚤어진 위정자들을 더욱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헌법수호청의 신설, 대통령 감시법, 국회의장 감시법, 대법원장 감시법, 공영언론감시법, 거짓말 방지법 등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박진용 언론인·전 매일신문 논설실장·전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역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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