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 정월 대보름(상원리곡·上元俚曲) - 김려

보름달 보며 눈물 짓는 시집 못간 처녀…개인 넘어선 국가적 불행 인식

정월대보름 보름달. 매일신문DB
정월대보름 보름달. 매일신문DB

정월 대보름 달빛 참말로 맑고 둥근데 / 元宵月色劇淸圓(원소월색극청원)

그 달을 먼저 보면 아들을 낳는다네 / 先見生男古老傳(선견생남고로전)

남쪽 이웃 노처녀는 도대체 무슨 일로 / 抵事南隣老處子(저사남린노처자)

말없이 돌아서서 눈물 줄줄 흘리는가? / 背人無語淚泫然(배인무어루현연)

정월 대보름날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줄을 지어 마을 뒷산 높은 곳에 올라가곤 했다. 뒷산에는 왜? 대보름달을 남보다 먼저 보고, 한 해의 소원을 빌기 위해서. 젊은 아낙네의 소원은 뭘까? 뭐니 뭐니 해도 아들을 낳는 것. 달을 먼저 봐야 아들을 낳는다니, 아낙네들끼리 달을 먼저 보겠다고 시끌벅적 야단법석일 밖에. 그런데 이웃집 노처녀는 무엇 때문에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릴까? 하늘을 봐야 별을 따고 시집을 가야 아들을 낳는데, 아직도 그 시집을 못 갔기 때문이다.

"사족(士族)의 딸이 가난하여 서른에 가깝도록 시집가지 못하면, 예조(禮曹)에서 임금에게 보고를 하고 경제적인 도움을 주도록 한다. 집안이 궁핍하지 않은데도 서른이 넘은 노처녀가 있으면, 그 가장에게 무거운 죄를 준다." 조선의 법전(法典)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나오는 말이다. 왜 이런 법이 생겨났을까? 노처녀, 노총각이 결혼을 못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국가적인 불행이기 때문이다. 정조(正祖)의 이른바 '서울 노처녀, 노총각 완전 결혼 프로젝트'도 바로 이와 같은 인식의 소산이다.

1791년 2월, 서울의 노총각과 노처녀는 모두 281명이었다. 정조는 그들에게 결혼자금을 지원해준 후에, 결혼성사 여부를 달마다 보고를 하게 했다. 불과 석 달 만에 남녀 한 명씩을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에 골인했다. 문제는 마지막 남은 두 사람. 그 두 사람끼리 결혼을 시켜 프로젝트를 완전히 끝내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을 했고, 그 해 6월 12일에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다. 정조의 '서울 노처녀, 노총각 완전 결혼 프로젝트'가 불과 넉 달 만에 100%의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다.

다 알다시피 지금은 젊은이들의 미혼이 국가 위기가 되어 있는 시대다. 문제의 심각성을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정조 때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더 다각적인 결혼정책을 내놓을 때다. 그리하여 마침내 정월 대보름에 둥근달을 보며 흑흑 울고 있는 노처녀가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되면, 노총각도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게다.

오늘이 바로 그 정월대보름! 달아 높이곰 돋으신 달아, 어기야차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노처녀 시집 좀 보내다오, 달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