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 부패에 빠진 도시에는 고통받는 힘 없는 시민들이 있다.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위해 항상 나타나는 한 존재가 있다. 그 영웅은 수백 마리의 박쥐와 함께 박쥐 가면과 복장을 입고 등장한다. 바로 배트맨이다.
자신의 캐릭터를 박쥐로 설정한 배트맨에게는 역설적이게도 박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주인공 배트맨은 어린 시절 우물에 빠져 우물 안 동굴 너머에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백 마리의 박쥐를 보고 정신을 잃는다. 박쥐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배트맨은 억만장자 부모님과 오페라를 보러 갔다가 박쥐가 나오는 장면에서 중간에 나오게 된다. 오페라가 상영되는 중이라 하는 수 없이 어두침침한 뒷문으로 나서게 된 세 사람은 예상할 수 없는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뒷문으로 나오다 좀도둑에게 습격을 당하고, 부모님은 좀도둑의 총에 죽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배트맨은 고아가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악을 벌하는 박쥐 캐릭터로 고담시민들의 영웅이 된다는 줄거리이다.
항상 선과 악의 대립 구도에서 악을 벌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을 막연하지만 믿게 되고, 악을 벌하는 그 누군가도 그렇게 완전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점 때문에 영화 배트맨 시리즈는 빼놓지 않고 보았던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박쥐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해 급속도로 확산 중인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근원지는 박쥐이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의 원인도, 에볼라의 원인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원인도 공교롭게도 모두 박쥐였다.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바이러스의 원 숙주는 박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박쥐가 최다 바이러스 보유 동물이 된 이유로 박쥐의 면역체계와 체온을 과학자들은 제시하고 있다. 박쥐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돼도 아프거나 죽지 않는 뛰어난 면역체계를 가지는 식으로 진화하면서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었다. 또 박쥐의 체온은 38~41℃인데 이러한 높은 체온은 박쥐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왜 박쥐는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주요 숙주가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산업화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산업화로 인해 서식지를 잃게 된 박쥐들이 과일 농장으로 몰리게 되고 이때 박쥐가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돼지와 같은 다른 동물들을 거쳐 인간에게로 전파되었다고 본다. 또 집단 공장식 사육 시스템으로 인한 바이러스의 변종이 늘어나게 되었고, 세계화로 인해 국경을 넘나드는 인간과 동물의 이동이 변종 바이러스의 확산을 증폭시킨다고 설명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자연과 환경을 통제하고 개발하면서 경제를 성장시켰다. 하지만, 최근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보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선물만을 준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과학기술이 가져온 자연과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불안감은 더 커져간다.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변화라는 점에서 불안감은 공포감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정보통신의 기술 발전은 오히려 왜곡된 정보와 가치관의 유통을 확산시켜 신뢰감은 더 떨어지고 있다.
많은 가짜 뉴스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재미 삼아 확진자가 어디에 있고, 어느 경로를 통해 이동했는지를 SNS에 올린 사람도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감염된다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돌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렇게 허망하게도 근거 없는 말들과 판단에 무너져버리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실망을 감출 수 없지만, 그래도 우한의 중국 교민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환영했던 아산과 진천의 국민들이 있기에 위안이 된다. 그런데 돈 받고 교민을 받았다, 아산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가짜 뉴스까지 돌고 있으니 씁쓸하다.
인간의 이기심과 과학기술의 발전, 자본의 이익을 위한 비인간적인 행동들, 정치 이념의 투영이 뒤섞여 초래한 지금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으로서의 신뢰와 연대뿐이다. 신뢰와 연대를 깨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들을 처벌하고 안전을 지켜 줄 이 시대의 영웅 배트맨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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