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새벽. 유리창 너머 푸른빛이 서서히 채도를 높이며 아침을 알려올 때,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온다. 저기 유리창을 봐. 하얀 눈꽃이 온통 수놓았어. 눈의 여왕의 숨결이 닿았나봐. 지금 여왕의 숨결이 녹아 고귀한 눈물방울로 바뀌고 있어. 그 아름다움을 시기한 아침요정이 비춘 빛 때문일 거야! 너무 낭만적이지 않아? 덕분에 눈물방울은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잖아! 앤이 지금 내 옆에 있다면 창에 맺힌 서리와 이슬방울을 보고 흥분하며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처음엔 거창한 표현들에 눈살을 찌푸릴지 몰라도 어느새 그녀를 따라 세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의 이름은 앤 셜리. 누구냐고? 그럼 이렇게 말해보자.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1970~19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만화주제가를 흥얼거릴 것이다. 어른이 돼서 제대로 만나게 된 엉뚱하지만 강렬한 그녀는 많은 것을 남겼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상상력, 그동안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들의 아름다움을 경이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눈, 그리고 삶을 뜨겁게 대할 펄떡이는 심장.
책의 저자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1874년 캐나다의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있는 클리프턴 마을에서 태어났다. 생후 21개월 만에 어머니를 잃고 캐번디시에서 우체국을 경영하는 외조부모의 손에 맡겨져 자랐다. '앤' 이야기 속 시골 마을의 서정적인 묘사와 표현들은 이때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다. 11살에 이웃 독신 남매의 집에 어린 조카딸이 와서 사는 것을 보고 짧은 글을 썼던 것이 훗날 『빨강 머리 앤』의 모티브가 되었다. 『빨강머리 앤』은 1908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고 『에이번리의 앤』 등 10여 편의 속편을 발표했다.
프린스에드워드섬의 시골 마을 에이번리에 사는 매슈 커스버트와 마릴라 커스버트 남매는 농장 일을 거들 남자아이를 입양하려 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남자아이가 아닌 빼빼 마른 빨강머리 소녀의 등장! 앤은 "아저씨가 오늘 밤까지 데리러 오시지 않으면 (중략) 나무에 올라가서 밤을 보내려고 마음먹었거든요. (중략) 하얀 벚꽃이 활짝 핀 나무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잔다니, 굉장히 멋질 거 같지 않으세요?"라거나 "제 진짜 이름은 아니지만, 코딜리어라고 불러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정말이지 우아한 이름이잖아요."(p.45)라며 엉뚱한 소리를 쉴 새 없이 늘어놓는다. 앤은 넘치는 상상력으로 몽상에 빠져 일을 망치기 일쑤여서 늘 마릴라에게 혼이 났지만, 특유의 긍정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다. "앞으로 알아야 할 온갖 것을 생각하면 신나지 않으세요? 그럼 살아 있다는 게 정말 즐겁게 느껴지거든요."(p.29), "예쁘다고요? 예쁘다는 말로는 모자라요. 아름답다는 말도요. 그런 말로는 한참 부족해요. 아, 황홀하다, 황홀하다는 말이 좋겠어요."(p.35) "내일을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으세요? 내일은 아직 아무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새로운 날이잖아요."(p.292)
그녀를 보고 있자니 만화 주제가 속 한 구절이 계속 떠오른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최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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