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바뀝니다. 우리 삶의 터전 대구도 날아가는 시간과 함께 역사를 이어가거나 추억 뒤켠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추억하고 공감할 만한 대구 명물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봅니다. 짧게는 20, 30대 청년들도 생생히 기억할 것들부터 길게는 40대 이상 중장년, 노년층의 젊은 시절을 함께 해 줬던 것들까지.
대구 시민을 웃기고 울린 명소와 유명 인사의 어제와 오늘을 여러 차례에 걸쳐 여러분과 함께 들여다볼까 합니다. 매일신문 디지털국 기획 '메모리 인 대구'(Memory In Daegu)의 문을 엽니다.

'중파'. 대구 중부경찰서 산하 관서인 중앙파출소의 약칭이자 애칭이다.
많은 대구시민이 한번이라도 중파를 불러 보거나, 들어 봤거나, 이곳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그 주변을 지났을 것이다. 사건사고와 무관한 일반 시민들조차도 왠지 모르게 친숙해 하던 이곳. 만인의 기억 속 '만남의 장소' 역할을 했던 중파는 2018년 위치를 옮겼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옛 중파 터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다림과 만남을 이어 가고 있다.
◆1900년대 대구경찰서(현 중부서) 산하 기관으로 설치
중앙파출소는 100년 역사를 지닌 경찰관서다. 이곳 내력을 들여다보려면 우선 상위 기관인 대구 중부경찰서의 역사부터 살펴 봐야 한다.

대구사(大邱史) 등에 따르면 현 중부경찰서 자리는 1895년 조선 말기 경무관제도(현 경찰제도의 전신)에 따라 대구와 경산, 청도를 관할하는 '대구부' 청사가 들어섰던 곳이다.
1908년 일제가 이곳에 대구경찰서를 지었다. 산하에는 대구순사파출소, 서문순사파출소, 대구정차장전순사파출소 등을 두고 대구 전역의 범죄행위를 감시 감독했다. 이때, 일본의 제도로부터 나온 파출소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외근 경찰들이 범죄 현장에 즉시 출동해 초동 조치하고자 둔 것이다.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났다. 대한민국 경찰이 창설되면서 대구경찰서는 한국 경찰 산하기관으로 다시 문 열었다.
대구경찰서는 1946년과 1959년 각각 남대구경찰서(현 남부경찰서), 동대구경찰서(현 동부경찰서)가 신설되면서 두 경찰서에 관할지역 일부를 넘겨줬다.
1979년엔 현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 있는 자리에 대구경찰국(현 대구지방경찰청)이 생기면서 그 산하로 편입, 지금의 중부경찰서로 이름을 바꿨다.
1979년 서부경찰서가 신설되면서 중부경찰서는 다시 관할지역 일부를 넘겨줘 지금의 중구만을 맡는 지금의 형태를 띠었다.
중부경찰서는 1895년부터 현재까지 125년 동안 건물만 세 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졌다. 소속과 이름도 4번째 바뀌었다.
◆중앙파출소, 1928년 '개소'… 현대식 건물 40년 쓴 뒤 최근 신축 이전

옛 중앙파출소 역시 중부경찰서 변혁의 역사를 고스란히 함께했다.
대구경찰청과 국가기록원 보유 자료 등을 고려하면 중앙파출소는 일제강점기인 1928년 7월 15일 현재 동성로3가 56-3(중앙대로 382) 위치에 목조 건물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앞선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동명의 중앙파출소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나 정확한 주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1974년 12월 31일 새로이 문을 열었다. 현대식 건물로 재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옛 중앙파출소는 약 100㎡(30평) 규모 대지에 약 132㎡(40평) 건물이었다.
2003년 9월 16일 이곳은 경찰청 직제 개편 정책에 따라 지구대의 하나인 '중앙치안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치안센터는 파출소보다 근무 경찰 수가 적어 일손이 부족하다는 등 이유로 다시 직제 개편에 처하면서 2010년 4월 30일 '중앙파출소' 이름을 되찾았다.
2016년에는 청사 외벽에 '시민의 안전우산' 조형물을 설치, 경찰이 4대 사회악 범죄에서 시민을 지킨다는 의미를 표현하며 행인들 눈길을 끈 바 있다.

40년 이상 쓴 건물은 끝내 낡고 비좁아졌다. 경찰 10명 이상 상시 근무하고 밀려드는 민원인을 세워만 두기엔 사무실 공간이 상당히 작았다. 이런 이유로 신축 이전 필요성이 제기됐고, 2015년 12월 30일 '중앙파출소 신축 이전 공사' 예산안이 정기국회를 통과했다.
경찰은 2018년 2월 사업비 4억9천만원을 들여 약령시 서문 부근인 중구 수동 56-1에 새 청사를 착공했다. 이전 청사는 7개월 만인 2018년 8월 20일 문을 열었다. 대지 580㎡, 건물면적 288㎡ 규모다.
이전 청사보다 전체 면적이 4배 이상 넓어졌고, 민원인이 방문하기 좋게끔 주차공간도 확보했다. 1층엔 민원응대 공간과 조사실, 무기고가 있고 2층엔 직원 숙직실과 샤워실, 조리실이 들어섰다.
◆만남의 광장 '중파'… 100년 역사 시민과 함께 숨 쉬어
옛 중앙파출소는 100년의 역사를 시민과 함께했다.
청사가 있던 중앙통, 동성로 일대는 하루 유동인구가 60만~100만명에 이르러 그야말로 교통, 지역경제 중심지다. 옛 제일극장(현 문화예술전용극장 CT), 옛 중앙시네마, 옛 아카데미극장(현 CGV대구아카데미), 동아쇼핑(현 이랜드 동아백화점 쇼핑점), 옛 통신골목, 로데오거리, 약전골목, 떡전골목, 진골목 등이 시민들과 관광객 발길을 끌어모은다.

옛 중앙파출소는 이런 중앙통과 동성로 남쪽 초입에 정확히 입지했다. 버스에서 내려 이곳에 다다르면 시내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 시내에서 만날 약속을 잡을 때면 "'중파'에서 보자"고 말하곤 했다.
지난 6일 옛 중앙파출소 앞에서 만난 여수현(29) 씨는 "직장 동료를 기다리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중파' 앞에서 친구들과 만났다. 갈 곳을 특정하지 않았을 땐 이곳에 모여 어디로든 다니다가 음식점과 놀거리를 찾아가곤 한다"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많으니 경찰 업무량도 많았다. 1960년 2월 28일 대구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 시위대가 삼덕우체국에서 중앙통, 중앙파출소, 옛 경북도청(현 경상감영공원)을 지나며 데모하다 잡혀간 것으로 기록됐다.
2.28기념중앙공원과 대구백화점 앞에서도 틈만 나면 집회, 시위가 벌어졌다. 평소에도 절도, 각종 다툼·시비가 벌어졌으며 길 잃은 아이를 찾거나 목적지 위치를 묻는 민원인이 끊임없이 오갔다. 중앙파출소는 2010년대 기준 하루 평균 50~70건의 전화 및 방문 신고를 처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3~1986년과 1998년 각각 중앙파출소 소장 등으로 근무한 전직 경찰 정철규(81·경위 퇴임) 씨는 "1980년대 통금 해제 이후 밤 늦게까지 해방감을 누리던 청년들이 음주며 소매치기며 각종 사건을 일으키는 바람에 중앙파출소로 신고 접수가 끊이지 않았다. 깡패들이 장사 잘 되는 노래방에 취직시켜 달라며 위협하는 일도 많아 위협을 느낀 업주들 신고도 잇따랐다"고 말했다.
그는 "경주, 포항에서 대구로 와 미도다방으로 가려는 이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길을 물었다. 동아쇼핑이나 대백 앞에서 길 잃은 어린이를 맡아 돌보다가 끝내 부모를 찾지 못해 가까운 복지기관에 보낸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버스를 타고 중앙통을 지나던 승객이 귀중품 도난, 분실 사실을 알자마자 버스에서 내려서는 눈에 가장 잘 띄는 중앙파출소에 들어와 신고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회상했다.
1990년대 중반 중앙파출소에서 일한 서석구(58) 중부경찰서 교통관리계장도 "대구백화점 광장 공중전화 부스 앞에선 부스 하나 뒤로 사람 5~10명이 줄지어 기다렸다. 주말, 공휴일엔 시내에서 사람이 떼지어 천천히 걸어다녔을 정도였다"며 "범죄 피해를 우려해 중앙파출소에 귀중품이나 고가 악기를 맡기는 시민들 민원이 상당히 몰렸다"고 설명했다.
◆파출소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만남의 장소 '중파'로 불려
2000년대 들어 동성로를 포함한 대구시내의 규모는 CGV대구, 현대백화점, 롯데영플라자 등의 등장과 함께 날로 확대됐다. 오래전 지어 노후하고 비좁은 옛 중앙파출소 청사에선 늘어난 경찰 업무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18년 약령시 서문 가까이 신축 이전한 중앙파출소는 예전보다 훨씬 쾌적해졌다. 관할 구역이 그대로라 사건사고는 여전히 많지만, 넓어진 청사 덕분에 민원인이 몰린다 하더라도 답답한 감이 훨씬 줄었다. 경찰 일선에선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사랑하는 이들과 만나던 추억의 장소가 사라져 아쉽다, 이곳을 어떻게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옛 중앙파출소에서 근무했고 지금도 옮긴 신청사에서 근무 중인 장양식(49) 경위는 "민원인 응대 공간과 업무 공간이 대폭 커져 근무 여건이 상당히 좋아졌다. 근대골목을 돌아보려는 관광객들이 약령시에서 종종 길을 묻곤 해 옛 중앙파출소 특유의 정취도 일부 남아 있다"면서도 "중앙파출소가 더 이상 수많은 시민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지 않는 점은 경찰이자 대구시민의 한 사람으로 아쉬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시민 김민선(28) 씨도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잡을 땐 여전히 이곳을 '중파'라 부르며 여기서 만난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옛 중앙파출소 건물을 관광안내소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는 지난 7일 건물을 계속해 사용할 수 있을지를 따지는 정밀안전진단 용역을 시작했다.
재사용해도 좋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예산 4천만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뒤 이르면 오는 7월부터 대구 관광정보센터(가칭)로 활용하고 대구관광협회에 운영을 맡길 방침이다. 재사용이 불가능할 경우 재건축 등 방안을 검토한다.
건물이 떠난 터에는 여전히 '중파'라는 이름이 남아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곳은 앞으로도 대구시민의 만남의 장소이자 대구를 찾는 관광객들을 돕는 곳으로 역할을 이어 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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