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심'. 말 그대로 '남을 위한 마음'이다. 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보다 상위의 욕구로 여겨진다. 아무런 이유 없이 댓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 뭔가를 베풀어 개인적인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것. 특히 이 욕구는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이로운 결과를 낳게되는데, 대표적인 행위가 바로 봉사다.
최근에는 대인(對人) 봉사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봉사가 생겨나고 있다. 유기견 봉사도 그 중 하나. 2018년 6월 6명으로 시작한 2030 유기견 봉사 커뮤니티 '러피월드'는 지난해 말 기준 48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단체로 성장했다. 이들은 매주 주말마다 서너시간씩 대구와 경북의 유기견보호소를 찾아 환경 개선과 입양 홍보 등에 앞장서고 있다.

러피월드를 이끄는 곽동진(30) 씨는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이 버려진다. 유기된 강아지의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있기에, 그 책임을 나눠갖고자 하는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봉사자들이 좀 더 즐겁게 지속적으로 봉사를 이어나가서, 결국 유기견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오전 9시, 대구 한나네보호소를 찾은 러피월드 봉사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유기견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 좋은 가족을 만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마음 힐링은 덤
"유기견보호소 봉사를 한다고 하면 보통 대단하다, 부지런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오히려 여기에 와서 마음의 힐링을 얻고 가죠."
김영우(32·대구도시철도공사 기계부) 씨는 2018년 11월 한나네보호소에 첫 발을 디뎠다. 다양한 취미모임의 회원을 모집하는 '소모임'이라는 앱에서 유기견 봉사단체에 가입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원래 주말에 별 일이 없으면 집에만 있는 '집돌이'였다. 봉사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도 늦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라며 "아침부터 좋은 공기를 마시며 봉사를 하면, 숨이 차도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해진다. 하루가 보람차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 씨에게 유기견들은 마음의 힐링을 주는 존재들이다. 보호소에 처음 왔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밝은 표정으로 맞아주기 때문.
특히 그는 개들이 입양가는 걸 볼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김 씨는 "봉사를 하다 입양 목적으로 보호소를 찾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반갑다"며 "다만 낯가리고 공격적인 개들은 입양이 잘 안되고, 보호소에 개들이 워낙 많다보니 미용 관리가 잘 안돼있는 점도 안타깝다"고 했다.
김 씨는 "인터넷에 가끔 펫숍에서 올리는 강아지 분양글을 발견하는데, 댓글로 유기견 입양을 권하곤 한다. 마음의 상처가 있긴 하지만 하나같이 밝고 사람을 잘 따르는 아이들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저 귀엽고 예쁘다고 개를 샀다가, 책임지지 못하고 유기견으로 만드는 일이 더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주말 아침 피곤하지만 하고나면 뿌듯해
박윤서(26·대구 달성교육지원청 소속 교육행정직) 씨는 17년간 기르던 미니어처핀셔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지난해 5월부터 유기견 봉사에 참여했다. 부모님의 반대로 다른 개를 키울 상황이 되지 못했다. 봉사단체를 검색해 혼자 직접 유기견보호소를 찾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박 씨는 "처음에는 개가 너무 많고 환경이 열악해 봉사하는 것이 힘에 부쳤다"며 "이제는 일이 손에 익숙해져서, 한나네보호소 외에 구미나 경산, 경남 양산에 위치한 유기견보호소에도 찾아가서 봉사를 한다. 물론 시설이 괜찮은 보호소도 있지만, 그곳에 있는 개들이 불쌍하기는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특히 개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터라, 이곳의 개들이 얼마나 좋지 않은 환경에 있는지 느껴진다고 전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추위와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봉사자들이 차양막과 비닐을 설치해줘도 한계가 있다. 겨울에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심한 경우 얼어죽기도 한다. 일반 가정에서 키우는 개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더 실감하게 된다"고 했다.

박 씨는 가끔 친구들을 불러모아 봉사활동을 함께 한다. 개인적으로 주말에 직접 시간을 내서 보호소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운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박 씨는 "주변에서 어떻게 봉사에 참여할 수 있냐고 묻는 이들은 많지만, 막상 보호소를 찾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런 이들에게 일단 한 번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며 "친구들이 와서 보호소 환경도 직접 보고, 봉사자들과 웃으며 함께 봉사하다보면 자발적으로 오려고한다"고 말했다.
그녀도 주말 아침마다 보호소를 찾는 것이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이유 없이 집에서 쉬면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고 전했다. 박 씨는 "예전에는 유기견들을 다 안락사 시키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을 악용해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와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볼 땐 정말 기분이 좋지 않다"며 "만약 또 개를 키우게 된다면, 유기견을 입양하고싶다. 보호소에 있는 개들이 이름을 부르면 달려오고, 알아봐주는 것 같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버림 받은 개들, 그래도 사람이 좋대요
"보호소가 망했으면 좋겠어요."
봉사자 문현진(30·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 헌혈개발팀) 씨가 대뜸 소박한(?) 바람이라며 이런 말을 건넸다. 그는 "얼른 이 강아지들이 좋은 가정으로 다 입양 가서, 유기견보호소가 필요 없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전했다.
문 씨는 매달 세번 이상 꾸준히 한나네보호소를 찾아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8년 7월 이후 벌써 1년반이 넘었다. 문 씨는 "처음 보호소를 찾았을 때 느낌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전혀 정비되지 않은 바닥에는 흙과 똥이 한데 섞여있었고, 개들은 먼지투성이에서 뒹굴었다. 한창 무더울 여름이었는데 그늘이 없어 헥헥거렸다"고 했다.
그러한 모습들이 눈에 밟혀, 문 씨는 더욱 열심히 봉사에 참여했다. 그는 "지금은 보호소 내 번식을 막고자 개들을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하고, 바닥에 벽돌을 깔고 견사를 지어 환경이 비교적 나아진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개들에게 물·사료 주기, 변 치우기 등 급급하게 처리해야하는 일 자체가 워낙 많다보니, 입양이나 시설 개선에 집중하기가 힘들다는 것.
문 씨는 "보호소에 수도 시설이 없어서 생수를 후원 받아 수백마리의 개들에게 겨우 먹인다는 점도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깝다. 여름이면 물이 부족할 때도 있다"고 했다. 이어 "개들이 무책임한 사람들 때문에 버려진 것도 불쌍한데, 이곳에서 사료를 더 먹기위해 서로 싸우고 물어뜯는 모습을 보면 더 안쓰럽다"고 말했다.

광주가 고향인 문 씨는 직장 때문에 대구에 안착했다. 봉사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봉사자들과 함께 친목모임을 하며 이곳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는 대구를 떠나지 않는 이상 지금처럼 꾸준히 봉사를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원해주는 많은 분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최대한 많은 분들이 기회가 된다면 보호소에 와서 개들이 처한 환경을 직접 보고, 느꼈으면 합니다. 사람에게 버림 받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좋다고 온몸으로 반겨주는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거예요."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