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수좌 적명/봉암사 수좌 적명 유고집/불광출판사 펴냄

지난 해 연말 봉암사 수좌 적명(寂明)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 소식은 다소 들떠 있던 세간을 적잖게 놀라게 만들었다. 출가 60년 동안 오로지 선(禪) 수행에 몰두했고 어떤 절간 지위도 마다한 채 애오라지 수좌로 살다 떠났기에 적명 스님의 입적은 한 가닥 마음을 절간에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애석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산은 말없이 높고 맑은 호수의 물은 홀로 깊은 법이다. '영원한 수좌'를 자처한 적명 스님은 생전에 법문도 책도 당신이 꺼려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입적 후 스님의 일기와 법문 몇 편이 남아 그의 치열한 구도 여정을 엿볼 수 있게 됐다.

'수좌 적명'은 스님의 첫 책이자 유고집이다.

'어느 한 여인도 사랑하지 않으나 여인에 대한 욕망은 한이 없다. 잠깐이라도 마음 창문 열리면 욕락(欲樂)은 잘도 쏟아져 흐른다. 아, 하늘에 달은 밝고 바람은 찬데 마음 속 열기 언제 다하려나….'

사족이 필요 없을 만큼 간결한 문장은 평소 스님의 인품을 짐작케 한다. 책의 1장은 스님의 30여년간 남긴 일기 가운데 70편을 엄선해 엮었고, 2장은 선방에서 수행자들에게 종종 했던 짧은 법문을 모았으며, 3장은 월간 '해인'지에 소개된 인터뷰와 추모 글을 수록했다.

'있는 것 어느 하나 허상 아님이 있던가? 조그만 들꽃에 팔려 벼랑을 구를까 두렵노라'

스님의 일기는 세사를 초월한 경계에 선 도인 대신 현재를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 적명을 보는 듯하다.

또 행자들에게 말한 법문은 '보살의 길'을 강조하고 있다.

'깨달음은 일체가 자기 아님이 없음을 보는 것이니,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사람이 깨달은 자이다.'

적명 스님은 자기 자신에게도 참 엄격했다. '수좌의 마음속에 안이함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는 자긍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수좌의 가슴은 천 개의 칼이요, 만 장의 얼음이어야 한다.'

한 평생 한 조각 서늘한 얼음덩이를 가슴 속에 간직하고 살았던 수좌 적명은 없지만 그가 남긴 글은 성(聖)과 속(俗)을 떠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웅변하고 있다. 232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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