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원으로 시작해 은행장, 중소기업청 초대청장을 지낸 지은이의 회고록이다.
올해 85세의 지은이는 1936년 경북 상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상주와 대구에서 다닌 6년간의 중·고 시절은 전쟁만큼이나 치열하고도 비참했다.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도 어려웠던 처지의 가난한 농가에서 50리 밖 읍내 중학교로 진학한다는 것은 예삿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배워야만 산다'는 소년의 강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당시의 가정형편으로 상주에서 대도시인 대구로 진출, 고등학교에 진학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부모님의 승낙도 없이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내기 위해 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날, 쌀 한 말을 들고 연고라고는 전혀 없는 대구에 갔다고 한다. 이 집 저 집 낯선 집 대문을 두들기며 며칠만 머물게 해달라고 간청해 보았지만, 전쟁중에 모두가 어려웠던 처지라 거절을 당했다. 다행히 국민학교 은사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루고 진학하게 됐다. 이 애달픈 사연에서 당시의 처절했던 생활상을 상상할 수 있다.
지은이는 고려대 상학과 졸업과 동시에 한국은행 신입행원 모집에 합격해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 임원으로 승진해 부총재 자리까지 올랐다. 이후 국책은행인 중소기업은행 은행장으로 발탁돼 자리를 옮겼다.
한국은행 임원시절, 국정감사를 나온 국회의원들에게 "국회의원들 정신 차리시오"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는 지금도 금융가에 전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은행장 시절에는 인사청탁을 위해 청와대로 호출한 경제수석에게 미리 작성해서 갖고 간 사표를 건네면서 "그런 식으로 대통령을 모시면 아니 됩니다"면서 청탁을 거부했다.
지은이는 은행인사에서 전쟁당시 오른손을 잃은 장애인으로 업무능력이 뛰어났던 부장을 임원으로 승진시켰다. 당시의 '대졸은 백인, 상고졸업은 흑인'이라는 풍토의 은행분위기에서 능력이 뛰어난 상고출신의 부장을 이사의 자리로 올려 은행가의 새로운 전통을 세우기도 했다.
지은이의 신념은 "어느 상사의 지시라도 부당하면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중소기업은행장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새로 발족한 중소기업청 초대 청장의 중임을 맡게 됐다. 청장은 차관급의 고위직 공무원이다.
지은이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중소기업에 관한 일은 물론 국가경제전반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뒤 공직생활 38년을 마감했다. 지은이는 공직생활 중 '애국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사에 뚜렷하게 기록될 만한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368쪽, 2만4천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