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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1955년 9월 14일자
1955년 9월 14일자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구속 기소된 최석채 주필이 제 2회 공판에서 당당한 자세로 심문에 응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박상전 정치부 차장
박상전 정치부 차장

오는 4·15 총선부터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18세(2002년 4월 16일 이전 출생)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고3 수험생들도 투표장을 찾아야 한다.

고3으로 연령을 낮춘 이유는 청소년들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 선거권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 때문이다. 이 나이 때면 결혼, 군 입대, 공무원시험 응시 등이 가능한데 투표권만 배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논리다. 급속한 고령화사회에서 노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년층 의견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선거 연령 조정에 일조했다.

찬성론자들의 예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거권 연령 하향은 세계적 흐름'이라며 시대적 과제임을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만 빼고 모두 18세 이하인 점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는 외국의 사정과 전혀 다르다.

미국과 유럽 등 18세 선거권을 인정한 나라는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3학년에 해당하는 시기다. 이 때문에 대학입시 등 공부에 매진해야 할 시기인 수험생들에게 선거권과 선거운동을 허용하면, 정치 갈등과 대립이 교실로 이어질 공산이 적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이번 선거부터 학생들도 선거에 관한 의견 개진과 의사 표시가 가능하다. 이와 함께 개별적 대화와 전화를 통해서도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문자메시지·인터넷홈페이지를 활용해도 무방하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9일 대구 남구 경북여고 앞 인도에 중구선거관리위원회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9일 대구 남구 경북여고 앞 인도에 중구선거관리위원회가 '18세 선거권 확대'에 따른 선거정보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여 놓아 눈길을 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범법자가 될 여지도 있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르면 고3 수험생들의 선거운동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2개 이상의 교실을 선거 목적으로 방문하면 안 되고 동아리·학생 단체의 특정 정당·후보 지지 선언도 금지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나 후보자 비방 글을 게시하거나 전송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금지 규정을 철저히 숙지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여권 주도로 선거 연령 하향이 관철됐으나 더불어민주당 등 주도 세력들마저도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고3 수험생의 투표 허용으로 약 17만 명의 유권자가 늘어났으나 관련 예산은 전혀 확보되지 않은 것이다.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홍보물과 문자메시지 비용 등을 더 투입해야 하지만 개정된 선거법에는 이와 관련된 비용 증가는 한 푼도 없었다.

청년 정치의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은 어머니에게 각막을 기증해 화제가 됐던 원종건(27) 씨를 청년 후보로 영입했으나 '미투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출마의 꿈을 접었다. 미투 사건의 주요 내용은 원 씨가 여자 친구를 성노리개 취급했고 여성 혐오 발언을 일삼으며 가스라이팅으로 괴롭혀 왔다는 것이다. 20대 건실(?)했던 청년이 정치라는 무대에 올라서자, 발가벗겨지면서 인생은 180도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1955년 대구매일신문 주필로 정론직필을 생명처럼 여기던 최석채 선생의 사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제하의 글은 "어떤 시위나 대회라도 호소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공명(共鳴)의 자의식이 발동돼야 하지만 미숙한 학생들에게 어찌 그런 자각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 명시돼 있다.

헌법재판소도 이미 지난 2013년과 2014년 연이어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정치적 판단이나 의사 표현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며 "18세에게 선거권을 주는 방안은 위법"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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