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기생충이 풍기는 시대의 불편한 냄새

박민경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조사관

영화
영화 '기생충' 스틸컷
박민경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조사관
박민경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조사관

냄새에도 계급이 있다. 우리 사회 모든 요소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아파트, 자동차, 살고 있는 동네, 지역, 학교, 하물며 가방이나 옷에도 계급이 스며 있다. 아파트 브랜드를 기준으로 생활 수준의 계급을 정하면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휴거'(휴먼시아 거주), '엘사'(엘에이치에 사는 사람)라는 계급으로 비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자동차는 배기량이나 수입 여부에 따라 계급이 매겨진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강남과 강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지역 계급도 있다. SKY 대학과 수도권 대학 그리고 지방대의 구분은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취업 상황의 기준 계급이 된다. 이러한 차이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냄새를 풍긴다. 우리가 계급을 느끼는 요소는 수도 없이 많다. 모든 사람을 갑과 을로 교묘하게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모두 알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계급 요소들에 배여 있는 냄새들이다. 냄새에는 계급이 숨어 있다. 이 냄새는 혐오와 차별을 동반하기도 한다.

'기생충'이 아카데미까지 휩쓸었다. 기왕이면 영화 '기생충'의 흥행에 숟가락을 하나 얹어보자면 계급이라는 것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모든 시민이 평등을 얻어내게 된 대표적 역사적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1789)이었다. 우리나라는 갑오개혁(1895)이었다. 아래로부터 혁명이든, 위로부터 개혁이든 18세기 이래 신분제는 꾸준히 폐지되어 왔다. 결국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며(1조)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2조) 법 앞에 평등하다(7조)까지 수도 없이 평등함과 차별받지 않아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 우리 헌법 11조를 통하여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고,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렇듯 역사와 전통에 권위까지 가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바로 평등권인데도 영화는 차별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사실 과거에는 적은 자원을 나눠서 비슷하게 살다 보니 서로의 냄새는 비슷했다. 어린 시절에 같은 반 친구 중에 가장 잘사는 친구는 슈퍼집 아이였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외제차를 가진 집도 드물던 시절에는 서로 비슷비슷한 삶을 공유했다. 모두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면 차별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반지하뿐 아니라 넓은 정원을 가진 채광 좋은 집과 반지하 아래 어두운 지하실도 같이 공존하며 계급이 된다.

지금 한국 사회는 모든 영역에서 자원이 늘어난 상황이다. 문제는 이 늘어난 자원이 적당히 분배되어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한곳으로 치중되는 데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계급을 생성한다. 계급제가 폐지된 사회인지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우리 삶을 나누고 있다. 냄새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더라도 희석하거나, 그 냄새가 혐오와 차별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평등권에 기초한 국가의 제도 마련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대구 출신을 이유로 봉준호 감독 생가 복원이나 기생충 조형물 설치를 논하기 전에 영화 '기생충'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인권정책 마련을 지역 정치의 장에서 우선 논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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