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서 속 인물] 첫 선택에 실패한 사무엘

충분한 검증 없이 첫 왕에 사울…여론에 밀려 결정했다가 악재

조슈아 레인놀즈 작
조슈아 레인놀즈 작 '어린 사무엘'

구약성서 사무엘서의 주인공 사무엘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했던 마지막 판관으로 기원전 1103년부터 1017년경 생존했다.

이즈음 중국은 은(殷)과 주(周)의 교체기로 은나라 주(紂)왕의 폭압정치에 시달리던 문왕이 책사 강상(姜尙)을 영입해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닦고, 이어 무왕이 목야전투를 치른 후 마침내 주나라를 개국(기원전 1046년경)한다. 당연히 강상은 주나라 '개국공신 1호'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재상이자 제나라의 시조가 된다.

당시 이스라엘도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교체되는 시기로 부족동맹 시대의 막바지에 와 있었던 관계로 왕정시대가 필연으로 대두되는 역사적 시기를 맞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서 어머니 한나의 기도와 그에 따른 하느님의 확증으로 성별(聖別)된 존재로 태어난 사무엘은 유대교 제사장의 교육을 받고 자라나 하느님과 소통하면서 그가 말한 것은 다 이루어지도록 돼 있던 '금수저'였다. 이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로 알고 그 또한 이런 명성을 업고 판관으로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가운데 유대 부족동맹 안에서는 왕권국가 수립에 대한 요구가 거세게 일어난다. 하지만 사무엘은 아직 때가 아님을 알고 왕권국가 수립에 반대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사무엘의 아들들이 아버지와 달리 뇌물을 받고 불공정한 판결을 내리자 부족의 장로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했다지만 진짜 이유는 하느님이 없이도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만이 더 크게 작용했다.

"왕권국가가 되면 아들들을 군대로 징발당하고 딸들 역시 노력동원 대상이 될 것이다. 꼬박꼬박 조세를 납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왕권국가를 세울 것인가?"

사무엘의 웅변은 이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했다. 어쩔 수없이 사무엘은 급한 마음에 기골이 장대하고 외모가 준수했던 사울을 이스라엘 첫 왕으로 지목하게 된다. 충분한 검증 없이 단지 외모만으로 말이다.

첫 왕으로 선택된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잉여생산물 독점을 금지했던 당대의 전통을 무시하고 전리품을 챙김에 따라 사무엘도 하느님도 마음이 떠나게 된다. 결국 사무엘은 사울을 폐하고 두 번째 왕재(王材)로 다윗을 선택한 후 수명을 다한다.

사무엘은 그의 아들들이 부패와 뇌물에 눈이 멀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찾아가 왕을 세울 것을 요구했고, 그는 마지못해 첫 왕을 선택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새로운 왕정의 예비를 주도한 점에서는 동양의 강상과 서양의 사무엘은 둘다 '전환기의 경세가'이다. 단 강상은 그가 썼다는 '육도'에서 알 수 있듯 오랜 세월 '역사적 변화의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다면, 사무엘은 다수의 여론에 밀려 성급한 결정을 한 것이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개인의 삶도 매순간 선택은 언제나 운명의 길흉을 가르는 중요 변수이다. 강상은 자신을 찾아 온 문왕과의 장시간 대화를 통해 새 시대 인물임을 정확하게 파악한 반면, 사무엘은 뭇 사람들의 주장에 떠밀려 '억지 춘향 격'의 왕재 선택을 했던 것이다.

베들레헴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은 성장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사울의 탄압을 피해 블레셋으로 피했다가 그곳에서 싸움에 패한 사울은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의 고대사와 맞물려 있다. 어리석고 욕심이 많은 자가 우두머리가 됐을 때 그 국가는 결코 흥할 수 없다는 교훈은 동서양과 고금을 통해 역사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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