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나도 고발하라'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가 자신의 SNS 계정 프로필 사진을 #민주당만_빼고 해시태그로 바꾼 모습. 임미리 교수 페이스북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가 자신의 SNS 계정 프로필 사진을 #민주당만_빼고 해시태그로 바꾼 모습. 임미리 교수 페이스북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33년 4월 12일부터 5월 10일까지 베를린 등 독일 전역의 22개 대학 도시에서 '독일 정신에 위배되는 책'이 불길 속으로 던져졌다. 이른바 나치의 분서(焚書)로 에밀 졸라, 지그문트 프로이트, 토마스 만,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비독일적' 작가 학자들의 책 2만여 종이 재로 변했다.

이런 야만에 지식인들은 분노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오스트리아로 건너간 독일 작가 오스카 마리아 그라프도 그랬다. 그는 분서 목록에 자신의 이름이 빠진 것을 알고 1933년 5월 12일 '빈 노동자신문'을 통해 이렇게 조롱했다. "나도 불태워라. 나의 삶 전부와 저술 활동 전부에 의거해서 나는 권리가 있다. 내 책들을 장작더미의 순정한 불길에 넘기라고 요구할 권리, 갈색 살인도당(나치당을 지칭)의 피에 젖은 손과 썩은 두뇌에 바치지 말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역시 나치를 피해 덴마크에 머물던 브레히트는 이 글에서 영감을 받아 같은 해 가을 풍자시 '분서'를 썼다.

"위험한 지식이 담긴 책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리라고/ 이 정권이 명령하여, 곳곳에서/ 황소들이 끙끙대며 책이 실린 수레를/ 화형장으로 끌고 왔을 때…추방된 어떤 시인이 분서 목록을 들여다보다가/ 자기의 책들이 누락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화가…집권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나의 책을 남겨 놓지 말아다오!/ 나의 책들 속에서 언제나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인제 와서 너희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한단 말이냐!/ 너희에게 명령한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똑같은 사태가 이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를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자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등 진보 인사들이 잇따라 '나도 고발하라!'는 격문(檄文)을 쏟아냈다. 그러자 민주당은 화들짝 놀라 곧바로 고발을 취하했다. 그런다고 '고발'로 드러난 문재인 정권의 추한 민얼굴은 가려지지 않는다. '고발'은 문 정권의 실체를 재확인할 수 있게 했다. 감사를 표하고 싶다. 민주당,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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