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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탓할 거리가 더 필요한가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이던 1990년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이던 1990년 '내탓이오'스티커를 자동차 뒷 유리에 붙이고 있다. 매일신문 DB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어느 정부치고 그렇지 않을까만 문재인 정권의 남 탓은 유별나다.

'내 잘못 아닌 네 잘못'의 시작은 요즘 말 많고 탈 많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때는 2017년 8월로 거슬러 오른다. 추 장관은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2개월여 만에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졌다. 정부의 대처는 갈팡질팡 그 자체였다.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를 두고 혼선을 빚더니 검사 항목이 누락돼 또 혼란을 더했다. 그동안 살충제 검출 농가에서 생산된 달걀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오리무중이었다. 정부가 갈피를 못 잡자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폭발 지경이었다. 그때 추 대표가 등장한다. "대통령을 보좌했던 사람들의 직무유기가 바로 이번 사태의 근본 문제"다. 국민은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문제 삼는데 여당 대표는 사실상 전 정권 탓, 공무원 탓을 한 셈이다.

'잘하면 내 덕, 못하면 남 탓'은 정권의 오랜 특성이다. 어지간해서는 '내 덕'과 '남 탓'이 팽팽하다. 그런데 최근 내 덕이라 자랑할 일을 선뜻 떠올리기 어렵게 됐다. 정치는 내로남불로 요약된다. 이념 대립은 격화하고 국론은 분열됐다. 경제는 고용 참사에 자영업자 몰락, 저성장 고착화, 적자 재정, 빈부 격차 확대, 수출 급감, 부동산 폭등, 건강보험 재정 고갈, 공기업 적자 행진 등 부정적 요인투성이다. 외교적으로는 북 비핵화 달성은커녕 국제적 고립무원의 처지라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

'내 덕'이 사라지니 남은 것은 '남 탓'이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음에도 청년취업률이 곤두박질치자 "지난 10년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성장 잠재력이 매우 낮아져서"라거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산업 전반의 구조 개선에는 소홀한 채 사회간접자본에만 집중해서"라며 전 정권, 전전 정권 탓이 나왔다. 지난해 경제 위기론이 대두되었을 때는 "성장률이 2%를 달성하지 못하면 책임은 특히 자유한국당이 져야 한다"며 야당을 탓했다.

이젠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경제에 위기감이 가중되고 있다. 올해 성장률이 급락해 1%대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올해 우리나라 GDP 성장률을 2.5%에서 1.5%로 낮췄다.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2.4%)와 거리가 멀다.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바이러스 탓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경기가 살아나는 듯해서 기대가 컸었는데, 뜻밖의 상황을 맞게 됐다"며 코로나 탓에 가세했다. 그러잖아도 문 정부 출범 후 경제는 기저효과를 기대해야 할 정도로 더 없이 나빠진 상태다. 2017년 3.2%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0%까지 곤두박질쳤다. 가뜩이나 나쁜 경제에 코로나19라는 악재가 하나 보태졌을 뿐이다. 코로나 탓으로 악화된 경제를 덮을 수는 없다.

정부의 남 탓이 두려운 것은 정책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서다. 대통령이 자꾸 탓할 거리를 찾고 있다면 왜 그런지 스스로 둘러보는 것이 먼저다. 반구저기(反求諸己)라 했다. 맹자 공손추에 나오는 말이다. 활을 쏘아 적중하지 않으면 다른 탓을 하기보다 '돌이켜서 자기에게서 찾는다'는 뜻이다. 기분 좋게 여행을 떠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흠뻑 젖었다고 하늘을 탓할 것인가.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고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자신을 탓해야 한다.

시장 상인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친다면 코로나가 아닌 자신부터 둘러볼 일이다. 그래야 문제 해결책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내 탓이오' 운동으로 세상에 큰 울림을 남긴 김수환 추기경의 11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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