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와의 대화] 조선시대의 전염병 공포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온 나라, 아니 전 세계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문명과 과학, 정보가 발달한 21세기에도 전염병의 공포가 이처럼 심각한데, 이보다 모든 수준이 열악했던 전통시대 사람들에게 전염병은 그야말로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조선시대 전염병 기록은 먼저 실록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역병이나 역질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면 200여 건 이상 달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최초의 기록은 1393년 3월 태조가 심혈을 기울여 창건한 절인 양주 회암사에서 역질이 유행한 것이다. 회암사의 역질이 수개월 동안 계속돼 스님들이 다수 희생됐고, 왕사(王師) 자초는 급히 거처를 광명사로 옮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1411년(태종 11) 5월에는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동안 서울과 지방에 역질이 돌아 백성들이 많이 요사(夭死)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역질의 공포는 조선 후기에도 계속됐다. 현종 때인 1671년 1월 3일에는 '경상도에 굶주리는 백성이 5천100여 명이었는데 역병이 잇달아 번져 죽은 자가 200여 명이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소의 역질이 계속 전파돼 같은 해 8월에는 소 779마리가 역질로 죽었음이 나타난다. 당시 사람들에게도 전염병은 전쟁보다 무서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현종실록에는 '팔도에 기아와 여역, 마마로 죽은 백성을 다 기록할 수 없는 정도였는데, 삼남이 더욱 심하였다. …늙은이들의 말로는 이런 상황은 태어난 뒤로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의 병화보다도 더하다고 하였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1733년(영조 9)에는 전라도에 역질이 유행해 2천81명이 사망했고, 1741년 7월에는 관서지방에 역질이 들어 3천700명이 사망했다. 역질이 계속되자, 영조는 즉시 하교를 내려 "죽은 자는 방법을 다하여 거두어 묻어 주고 산 사람은 특별히 구원하여 살려내게 하라"며 사망자 시신 수습과 생존자의 구휼 정책에 나섰다. 그러나 사망자의 수는 급격히 늘어갔다. 경기에서 3천487명, 강화도에서 349명, 영남에서 1천933명, 황해도에서 46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전염병 폭풍이 조선을 휩쓸었다.

조선시대 주된 전염병은 콜레라, 두창, 성홍열,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었다. 이 중에서도 백성들을 가장 공포에 떨게 한 것은 콜레라와 마마라고도 불렸던 두창(천연두)이었다. 마마는 인공적인 인두(人痘), 우두(牛痘)가 생긴 후 천연적으로 생기는 병이라 해서 천연두라 불렀다. 마마가 무서웠던 것은 사망률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겨우 살아나도 병의 후유증으로 얼굴이 얽어서 곰보 자국이 생겼기 때문이다. 워낙 공포의 대상이다 보니 '마마신'이라며, 엎드려 절하면서 제발 가기를 부탁하는 신이 돼버렸다.

역병이 유행하면 기본적으로 환자와 격리 조치했다. 한양에 역병이 발생하면 환자나 시체를 도성 밖으로 추방하는 방식이었다. 성 밖에서 역병에 걸린 환자를 전담하던 곳은 활인서(活人署)로, 이들에게는 의원과 함께 의무(醫巫)를 배치했다. 평소 무의탁 병자를 돌보는 일을 맡다가 역병이 유행하면 따로 여막(廬幕)을 설치하여 환자들을 보살폈다. 굿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도 동원됐다. 무당이 나서서 몸에 악귀가 붙지 않도록 부채와 방울을 흔들고 장구도 쳤는데, '무당내력'이라는 책에는 마마신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이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역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여제(癘祭)가 상시, 또는 임시로 베풀어졌다.

1708년(숙종 44) 3월 숙종은 역질이 치열하게 전파되자, 신하들을 보내 산천과 성황당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 굿을 하고 제사를 지내도 역병의 유행을 해결할 수는 없었고, 의학적 방법의 수준이 올라갔다. 허준은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해 명의의 반열에 섰으며, 숙종 때 어의 유상은 왕의 두창을 치료한 공으로 종2품직까지 올랐다. 정약용은 홍역과 천연두 퇴치를 위한 이론을 정리한 책 '마과회통'을 저술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지석영이 우두법을 시행해 천연두의 벽을 무너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신종 바이러스가 인류의 의학적 성과와 보건 위생의 철저함으로 인해 완전히 소멸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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