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 임금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람- 작자 미상

태평성대 누리던 백성이 하는 말…우리네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 커

해가 뜨면 나가서 일을 하고 / 日出而作(일출이작)

해가 지면 돌아와서 쉬네 / 日入而息(일입이식)

목마르면 우물 파서 물을 마시고 / 鑿井而飮(착정이음)

배고프면 밭을 갈아 먹고 사는데 / 耕田而食(경전이식)

임금의 권력 따위가 나와 무슨 상관이람 / 帝力于我何有哉(재력하유어아재)

태평성대의 대표적 상징인 요임금과 순임금 시대! 그 가운데 한 분인 순 임금이 살 곳을 정해 사시면 흠모하는 사람들로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은 2년 만에 고을이 되고, 3년이 지나면 도시가 되었다. 요임금께서 순임금의 훌륭함을 들으시고, 시골에서 사는 그를 특별 발탁하여 두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했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자신의 아들 대신에 순임금께 천하를 몽땅 물려주셨다. 요 임금께서 돌아가시자, 순 임금은 무려 3년 동안 국물을 바라보나 담장을 바라보나 요임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다. 순임금도 자기 아들 대신에 훌륭하신 우임금께 천하를 몽땅 물려주셨다.

요순시대의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들인데, 그 꿈같은 시대에 지어졌다는 시가 더러 전해지고 있다. 위의 시는 요임금 시대의 한 백성이 불렀다는 '격양가(擊壤歌)'라는 작품인데, 태평성대에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는 순박한 백성들의 마음을 아주 소박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런 백성들에게 임금에 대해서 물어보면, 이렇게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게다. "임금이라니? 그게 대체 뭔데? 아니 세상에 그런 게 다 있었나?"

"훈훈한 남쪽 바람 솔솔 불어오니(南風之薰兮)/ 우리 백성들의 맺힌 앙금 다 풀어주겠네(可以解吾民之慍兮)/ 남쪽 바람 때맞추어 솔솔 불어오니(南風之時兮)/ 백성들의 재물이 늘어나겠네(可以阜吾民之財兮)" 순임금이 다섯줄의 거문고를 두드리며 불렀더니,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졌다는 '남풍가(南風歌)'라는 작품이다. 훈훈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면, 만물들이 우지끈 기지개를 켜고 다 일어나듯, 백성들의 마음에 맺혀있던 앙금들도 스르르 풀어지기 마련이다. 그 남쪽 바람이 때맞추어 불어오니 풍년이 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상적인 정치는 바로 그 남쪽 바람처럼 백성들의 가슴에 박혀있던 대못들을 뽑아주고, 백성들을 좀 더 잘 살게 하는 것일 게다.

부탁한다. 해가 뜨면 나가서 일을 하고, 해가 지면 돌아와서 쉬게 해다오. 부탁한다. 뽑아주지는 못할망정 국민들의 가슴에다 더 이상의 대못을 치지는 마라. 부탁한다. 제발 국민들이 이렇게 말을 하게 해 다오. "대통령이라니? 그게 대체 뭔데? 아니 세상에 그런 게 다 있었나?"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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